“방안에 숨은 ‘어른아이’ 좀 꺼내줘요”…전직 은둔청년이 돕는다[스.우.파]
은둔 당사자들을 상담 인력으로 키워내는 중
바쁘게 살아온 한국사회의 부작용…이제는 끊어낼 때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월 150만원을 주고서라도 방안에 스스로를 가둔 자식을 사회로 다시 내딛게 만들고자 하는 부모의 간절함. 그런 절실함에 힘입어 ‘안무서운회사’의 셰어하우스 사업이 지속되고 있다.
유승규(31)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짧게는 5년, 심하면 10년이 넘도록 은둔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라 자기 몸을 씻는 것도, 빨래를 하는 것도 잊어버린 사람이 많다”며 “셰어하우스에서는 그 ‘당연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화 훈련을 하고 같은 은둔을 경험한 사람끼리 만날 수 있게 해서 ‘나만 못났다’는 수치심을 줄이고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강북구 미아동의 ‘안무서운 하우스’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2022년 2월 창업해 시작한 은둔·고립 청년을 세상으로 다시 발 딛게 하는 사업은 유 대표 스스로가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는 과정이었다.
유 대표는 스스로가 방안에 숨어있었던 은둔자였다. 그는 대학을 다니다 모종의 이유로 은둔을 하게되면서 5년 가까이 밖에 나가지 않게 됐다. 그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막막했고, 수많은 시도에도 번번이 실패했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히키코모리를 지원하는 일본 비영리단체 ‘K2’ 한국지사를 만나 자립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곳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법을 다시 배우게 됐고, 호주와 일본의 은둔청년들을 만나면서 고립 청년 문제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깨닫게 됐다. 진로를 정했다. 유 대표는 이곳에서 2년 넘게 재직하면서 자신보다 더 힘든 청년들을 만났다.
하지만 보조금에 기대어 운영되던 K2가 코로나 시기와 겹치면서 사업을 철수하게 됐다. 같이 일하던 친구 4명과 유 대표가 직접 안무서운회사를 만들어서 이어나가기로 했다.
2박3일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회사 이름은 대인관계에 서툰 은둔청년들의 고민이 응축돼 지어졌다. 유 대표는 “내 문제를, 나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나를 부정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우리는 안 무서운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다, 그러니 다가오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안무서운회사는 최대한 직접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유 대표는 말했다. 현재 셰어하우스 사업과 상담코칭이 주 수입원이다.
셰어하우스(정원 6명)는 1인당 월 150만원 가량을 내야 입소가 가능하다. 음식부터 생필품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이고, 유 대표와 다른 직원들이 함께 상주하면서 생활 전반을 돕는다. 생각에 따라 다소 비싸게 느껴질 법한 금액대다. 유 대표는 “그럼에도 셰어하우스 입소를 원하는 분들이 꾸준하다. 이미 두 분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입주를 희망해 남아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유료 상담은 현재 1시간30분에 3만원을 받고있다. 유 대표가 전담하는 상담 및 코칭은 1시간에 10만원을 받는다.
유 대표는 “일반 상담센터보다 상담할 때 품이 더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거의 수사에 근접할 정도로 시간과 마음을 쏟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무려 13년간의 은둔생활을 접고 셰어하우스에 입주해 함께 지내고 있는 A씨에게 접근한 과정이 그렇다. 유 대표는 “부모님의 의뢰를 받았다. 상담선생님들도 모두 실패한 친구였다. 저희의 경험에 미루어봐도 이 정도 상태이면 절대로 방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A씨 스스로 본인 상황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중이라 다가가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치 탐정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티가 나지 않게 접근했다. 온라인게임에서 말을 걸면서 친해졌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문자를 보내서 안부를 물었다. 늘 만남을 거절하는 A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까지 두드리고 두드렸다. 약 6개월 뒤, 처음으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유 대표는 “정말로 방안에만 있고 싶은 사람은 누구도 없다. 분명 욕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알고보니 이 친구가 그동안 방안에서 인스턴트 음식만 먹으면서 미디어를 통해 봤던 특이한 음식들의 맛이 어떨지 궁금해하더라. 그래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꼬셔서 밖으로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A씨는 맛있는 음식을 위한 첫 외출 이후로 과거 은둔 청년이었던 사람들과 만나 같이 밥을 먹으면서, ‘나만 못났다’, ‘내가 문제야’ 등의 부정적 마음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그리고 1박 2일 캠프를 가서 ‘나도 다른 사람과 지낼 수 있구나’하는 용기를 가졌다. 이 과정에 1년이 소요됐다. 유 대표는 이같은 과정에 대해 “이 사람을 거의 사랑해야만 이 사람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그래서 회사는 현직 상담가·활동가인 ‘은둔고수’를 실제로 물리적으로 은둔해본 경험이 있는 당사자로만 꾸리고 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은둔 청년들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5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임신·출산·장애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집에만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2.4%로, 이를 청년 인구에 적용하면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은둔 청년은 24만7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유 대표는 청년들의 은둔을 막으려면 이제 우리 사회가 고도성장기 시대의 성공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과거 살아남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왔다. 이 예전 삶의 방식이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청년들에게도 정해진 인생의 시간표가 생겼고, 이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여기에 맞춰 살아내지 못하는 청년은 자신을 실패자로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세상과 단절을 택한 청년들이라고 해도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을 지목하며 한 가지 아이디어를 꺼내 제안했다.
유 대표는 “저희 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정부에서도 은둔청년들을 위한 사업을 많이 하는데 정책 홍보가 잘 되지 않는다. 은둔 청년들이 보는 플랫폼에 홍보를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은둔 청년들 은 방 안에서 유튜브를 많이 본다. 실제로 저희 활동가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고 그날 회사에 문의전화가 20통 왔다. 또 경제활동을 못하는 청년들이라 당근마켓에 자기가 가진 물건을 팔아 용돈을 마련하니 중고거래 플랫폼도 좋겠다. 배달음식도 시켜먹으니 배달의민족과 같은 플랫폼에도 홍보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2022년 만 25세에 은둔을 시작한 사람에 대한 1인당 사회적 비용은 약 15억 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은둔 청년을 25만명으로 가정해 사회적 비용을 추산하면 최대 375조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서둘러 나서야 하는 당위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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