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해 홍합은 누가 키워? 양식 합의의 전말
2015년 7월13일 독일에선 바덴해(와덴해) 갯벌과 관련한 중요한 합의가 이뤄졌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이하 홀슈타인주) 바덴해 국립공원 내 홍합 양식 허용 구간에 관한 합의였다. 바덴해에서 어민이 홍합 양식을 하는 면적을 2천ha(축구장 2800개 규모)에서 1700ha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 합의서에 독일 홀슈타인주의 환경수산부 장관과 홍합 어민 생산자 협회 대표가 서명했다. 그런데 서명자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밑에 서명한 단체들이 눈에 띈다. 홀슈타인주 자연보호협회를 비롯한 자연보호협회들과 바덴해 보존협회(Schutzstation Wattenmeer), 세계자연기금(WWF) 독일지부 등 환경단체들이 참여했다. 정부와 어민 당사자만이 아니라 어찌 보면 ‘외부자’일 수 있는 환경단체가 합의에 참여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홍합 수입종 양식에 대해서도 소송해 승소
WWF 독일지부를 대표해 당시 합의서에 서명한 한스 울리히(65) WWF 바덴해 지역 소장을 2024년 2월16일 후줌 국립공원바덴해센터에서 만났다. “바덴해 보호지역에서 가장 번창한 어업 중 하나가 홍합 양식이에요. 문제는 이 양식업을 하는 과정에서 바닥을 긁는 등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해저에도 다른 해양생물이 살아가니까요.” 울리히 소장이 말했다.
바덴해 보존협회와 WWF는 이전부터 홍합 양식을 포함한 바덴해 지역의 어업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어업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생물과 해양생태계의 위험을 정부 부처가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계속 나아지지 않자 2015년 1월 다른 환경단체들과 함께 독일연방자연보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에서 환경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환경보호를 위한 소송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독일에선 특별한 일이 아니다. “독일에선 국가나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자주 있습니다. 비영리단체(NGO)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소송을 걸 수도 있어요. 물론 소송은 최후 수단이고 WWF도 소송이란 방법을 자주 택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대화로 중재를 이끌어냅니다.”(울리히 소장)
WWF는 홍합과 관련해 소송을 걸어 승소한 적도 있다. 홀슈타인주 어민들이 홍합 종을 수입해왔는데, 이 때문에 홀슈타인주 바덴해의 해양생물 다양성이 문제를 겪는다며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홀슈타인주 행정고등법원은 2011년 말 홀슈타인주 외부 지역에서의 홍합 수입을 금지했고, 연방행정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이렇게 환경단체가 소송 등으로 바덴해 보존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정부와 어민들은 환경단체의 견해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2015년 7월 합의에서 정부와 어민들, 환경단체 3자가 홍합 양식 면적을 300ha(축구장 420개 규모) 줄이는 데 합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다만 줄어든 면적 중 최대 250ha는 어린 홍합이 양식 지역으로 옮겨질 때까지 자라는 그물을 설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 “정부와 어민들이 (환경단체를 빼고) 합의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환경단체는 다시 소송할 수 있거든요. 나중에 소송에서 (합의와) 다르게 결론이 나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3자 협의가 필요하죠.” 울리히 소장이 말했다.
정부는 환경단체 인프라에 올라타면 돼
독일의 환경단체가 정부와 어민들 사이에서 합의를 끌어내는 사실상의 당사자로 참여했다면, 네덜란드에는 환경단체가 어민들과 힘을 합쳐 정부 정책을 변화시킨 사례가 있다. 1970년대 네덜란드 제일란트주에 오스테르스헬더댐이 만들어질 때 댐 건설에 반대하는 ‘오스테르스헬더 바다를 열어라 활동가 그룹’(Action Group Oosterschelde Open)이라는 비영리 환경단체가 등장했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어민들과 일부 학자가 오스테르스헬더댐 건설에 반대했지만 적극적인 행동까지 나서진 못했다. 그러나 이 단체가 등장하면서 어민들과 힘을 합쳐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고, 결국 정부가 설계를 바꿔 24시간 해수 유통이 가능한 댐을 짓게 했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환경 인식이 퍼지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시점에 환경단체들이 지역 주민이나 어민들과 함께 뭉쳐서 반대했어요. 공동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죠. 이후 이런 환경단체의 활동이 단계적으로 발전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계속 확대됐죠.” 제일란트 주정부에서 환경보호 및 물관리 정책 담당을 했던 티에이르트 블라우(75) 박사가 말했다.
유럽의 비영리 환경단체들이 갈등 국면에서만 역할을 한 건 아니다. 환경단체가 정부보다 앞서 자연환경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모니터링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했다. 울리히 소장은 “국립공원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바덴해) 정보를 제공하는 센터가 있었다”며 “정부는 이미 만들어져 운영돼온 환경단체 인프라에 올라탄 경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에는 후줌 센터와 같이 관광객에게 교육과 정보를 제공하는 센터가 60여 곳 있다. 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환경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단순히 참여만 하는 경우도 있다. 센터로부터 모니터링이나 연구 업무를 위탁받아 진행하는 곳도 있다. 후줌 센터의 경우 전시관은 국립공원관리청이 만들었지만, 실제 입주해 운영하는 주체는 WWF와 바덴해 보존협회다. 바덴해 보존협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청년들(‘새 심장 소리 듣고, 고래가 되어보는 수업’ 기사 참조)을 관리하고 홀슈타인주 전역에 걸쳐 조류 모니터링 업무를 수행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거나,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울리히 소장의 경우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3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바덴해 공동사무국 이사회 고문도 맡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 변화다. 비영리 환경단체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인식 변화가 기반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울리히 소장도 유독 이 점을 강조했다. “관광을 놓고 보면 (독일에선) 이제 친환경적 생태관광이 많이 보편화됐거든요. 이 변화 과정을 보면 국민의 인식 변화가 있었어요. 그 인식 변화로 국민이 정부에 (환경보호에 관한)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부도 바꾸었던 거죠. 결국 (정부도, 관광 형태도) 다 바뀐 거예요.”
1982년 선언문을 시작으로 공동 관리해온 바덴해
3자 합의로 바다와 생태를 보호하는 모델은 한 국가 내부에만 있지 않았다. 바덴해 보존에 관해선 환경단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바덴해 공동사무국이다. 바덴해는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의 해안선 약 500㎞에 걸쳐 형성돼 있다. 그 면적만 1만1500㎢에 이른다. 한 나라가 열심히 관리하고 보호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가 동참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생태계를 보존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독일과 네덜란드의 정부와 시민, 환경단체가 만든 3각 거버넌스(의사결정 체계)처럼 공동사무국에서도 세 개의 나라가 3각 거버넌스를 통해 바덴해를 통합관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 나라는 어떻게 정책과 방향을 한데 모아 통합관리를 할 수 있었을까. <한겨레21>은 답을 얻기 위해, 2월15일 독일 빌헬름스하펜에 있는 공동사무국을 찾아 기후변화 이슈와 환경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율리아 부슈 박사, 조류의 이동 경로와 종다양성을 연구하는 크리스티네 마이제 박사, 언론 대응 업무를 하는 아니카 보스텔만 홍보과장을 만났다.
공동사무국의 역사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12월9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3개국 장관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바덴해 수호에 관한 최초의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독일에서 바덴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기 전의 일이다. 이날의 선언문이 지금까지 이어진 바덴해 보호 협력의 기초가 됐다. 이후 1987년 지금의 3국 공동사무국이 설립됐고, 당시 직원 2명에서 출발해 현재 11명(9명은 상근, 2명은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이 일하고 있다. 한국과는 2009년 갯벌보전을 위한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2023년 갱신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바덴해가 자생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보호하고 주변 환경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겁니다. 최근 사무국은 정보나 데이터의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요. 공동사무국은 3국 간 정책 조율뿐 아니라 모니터링도 하는데, 이 결과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게 중요해요.” 부슈 박사가 말했다. 나라는 3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6개의 서로 다른 단체가 소통하는 꼴이다. 독일의 경우 지방정부가 대부분의 권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바덴해와 인접한 홀슈타인주와 니더작센주, 함부르크가 각각 공동사무국의 조율 대상이다.
권한은 없고 무늬만 공동사무국으로 남는 것을 막기 위해 이사진에 각국의 환경부나 이와 비슷한 부서의 대표가 들어온다. 아울러 이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정기적으로 연다. 특별한 점은, 이 이사회에도 비영리 환경단체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의사결정권은 없지만 공동사무국이 운영하는 모든 워킹그룹마다 환경단체가 결합해서 정보를 얻도록 구성됐다.
공동사무국의 또 다른 주요 업무는 5~6년마다 품질 현황 보고서(QSR·Quality Status Report)를 낸다는 점이다. 보고서마다 3국의 대학 및 연구소 학자가 많게는 10명 넘게 참여한다. 보고서를 내는 분야도 크게 5가지(지형과 기후, 서식지와 공동체, 종, 인간활동, 오염)로 나뉘고 다시 각각 2~8개의 소분류로 나뉜다. 30여 개 세부 분야의 현황과 분석, 향후 제안에 관한 보고서가 주기적으로 만들어지고 공개되는 셈이다.
모니터링 결과 염습지·물범 수 증가
QSR 보고서를 보면 3국이 공동사무국을 만들어 바덴해를 보존하고 복원해온 노력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수치로 드러난다. 부슈 박사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물범의 개체수 변화를 꼽았다. “1975년부터 개체수를 측정했거든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개체수가 5천 마리에도 못 미쳤어요. 이후 사냥을 금지하고 공간 보호 구역을 설정하는 등 (공동사무국이 진행한)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늘어났어요.”
2022년 발표된 해양포유류에 관한 QSR 보고서를 보면, 바덴해에서 가장 풍부한 물범종인 참물범(Harbour Seal)의 개체수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4천여 마리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늘어나 2021년 기준 2만6721마리로 집계됐다. 회색물범도 20세기 중반 완전히 사라졌다가 2006년 첫 조사에서 2139마리가 관찰됐고, 2021년 9096마리로 늘어났다.
염습지도 공동사무국이 모니터링을 시작한 뒤 급속도로 늘었다. 2017년 발표된 보고서를 보면, 독일 니더작센주를 제외한 바덴해 지역에서 염습지는 2004년에 견줘 3750ha(서울 여의도 면적 13배) 늘었다. 마이제 박사는 “1990년대와 비교하면 바덴해 전체 염습지가 약 6천ha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염습지가 더 늘어나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염습지는 일종의 스펀지 구실을 하거든요. 홍수가 나면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완충지역이에요. 둘째는 엄청난 탄소가 내장돼 있어요. 염습지가 없어지면 그곳이 머금고 있던 많은 탄소가 다시 배출되고요. 생물다양성 문제도 있죠.”
가장 최근에 발표된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보고서다. 2024년 2월 초 공개됐다. 이 보고서는 “온실가스 증가로 온도와 해수면이 더 높아졌고, 강수 패턴과 바람의 변화가 발생했다”며 구체적으로 북부 지역의 이매패류(조개·홍합 등 좌우대칭 두 개의 껍데기를 가진 연체동물)가 남부 종으로 대체되거나 새끼 넙치류의 성장 저하 등의 변화를 언급했다. 아울러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와 정보를 더 자주, 집중적으로 교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렇게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만들고 공개하는 것에 대해 보스텔만 홍보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개가 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이 (바덴해의 중요성에 관해) 인식하기 때문이에요. 보고서를 보고 ‘이렇게 관리되고, 앞으로 저렇게 관리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거든요. 또 공동사무국이 3국의 세금으로 모니터링 등을 진행했기 때문에 이런 보고서의 공개는 당연히 필요하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공동사무국에서 몇 권의 책자를 받아 들고 나왔다. ‘2022년 QSR 요약 보고서’에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아돌프 켈러만. 켈러만은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갯벌 보존과 관련해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가 보고서 머리말을 썼다. 마침 다음날 그와의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켈러만 박사에 관한 이야기는 “국립공원이 가져온 실질적 이익, 데이터가 보여줬다” 기사로 이어진다.
빌헬름스하펜·후줌(독일)·미델뷔르흐(네덜란드)=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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