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전국 팔도·지구촌 MZ 섞여 '팝업 인증샷'…그들의 '원픽' 성수동
낡은 공장, 팝업스토어로 탈바꿈
연인·친구로 북적, 외국인도 엄지 척
원주민도 변화 체감, 떠나는 이들도 상>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한가운데 있는 편의점 GS25. 간판에 크게 적힌 'Door to Sungsu'(성수로 가는 문)만 보면 세련된 식당 같았다. 즉석 사진기를 든 직원이 만화 캐릭터 스펀지밥 옆에서 손가락 V를 그린 남자 어린이에게 "브이"를 외쳤다. 그 뒤론 연인 네 쌍이 차례를 기다리며 들떠 있었다.
매장 안도 여느 편의점과는 사뭇 달랐다. 스펀지밥 캐릭터로 꾸민 매장 내 '포토 존'은 커플, 친구, 가족들로 북적였다. 진열대는 편의점 핵심 상품인 라면, 간편식 대신 스펀지밥을 활용한 제품들로 채워졌다. GS25가 2022년 11월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으로 만든 이 점포는 '팝업스토어 성지' 성수동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통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2718050002728)
성수동 연무장길은 서울 시내 밖의 여느 마을 거리처럼 차량 두 대가 지나갈 정도로 넓지 않고 길이도 1km 안팎으로 짧았다. 도로 양 옆 늘어선 2~4층짜리 건물에 자리 잡은 때 묻은 미용실, 식당, 부동산은 익숙한 동네 상가를 떠올리게 했다. 드문드문 성수동 터줏대감인 자동차 정비 공장, 수제화 공장도 영업 중이었다. 지역 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 터전, 즉 원도심임을 드러냈다.
때 묻은 상점 사이, MZ 감성 팝업
연무장길 속 오래된 미용실, 식당 사이엔 젊은 분위기의 레스토랑, 카페가 어우러져 있었다. 거리는 청담동, 한남동, 홍대입구 등 서울 시내 주요 '핫플레이스' 못지않게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로 넘쳤다. 밸런타인데이뿐만 아니라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은 세 번 모두 성수동은 붐볐다. '신도심'으로서 면모도 지닌 성수동은 '동전의 양면 같은' 모습이었다.
최근 성수동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신제품이나 기업을 알리는 팝업스토어다. 이런 성수동을 두고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은 2021년 '한국의 브루클린'이란 수식어를 붙였는데 많은 이들이 이를 공감한다. 공업 지역에서 예술·문화를 껴안은 핵심 상권으로 탈바꿈한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과 성수동이 닮아서다.
특히 브루클린처럼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공장·창고가 팝업스토어로 주로 쓰인다. 팝업스토어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셈이다. 버려진 공장은 카페, 식당 등 다른 상업 시설이나 전시회 공간으로도 인기다. 성수동 골목 구석구석을 다녔다는 이모(29)씨는 "여러 종류의 건물, 매장이 섞여 있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성수동만의 독특함"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언어가 또렷, 글로벌 명소 우뚝
팝업스토어가 즐비한 연무장길을 따라 걷다 보니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다양한 언어가 들렸다. 성수동은 전국의 MZ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글로벌 명소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각기 다른 피부·머리색의 외국인이 연무장길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 위한 인증샷을 남기는 건 흔한 풍경이다.
연무장길 상징과도 같은 명품 브랜드 디올 매장 앞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던 일본인 나가타 메이(27)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성수동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출신의 클레멘(28)은 "한국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성수동"이라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원주민들은 성수동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6년째 한식 뷔페를 운영 중인 이기환(63)씨는 "개업 초기 인근 카센터, 공업사에 일하는 중장년층 손님이 70%였는데 이젠 젊은 층이 많고 매출도 더 뛰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팝업스토어가 자리를 잡은 2021년 성수동이 포함된 성동구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년 대비 10.9% 뛰었다. 이는 서울 전체 25개 구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였는데 여기에는 성수동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반대로 부동산 급등으로 자동차 정비 공장 등이 임대료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성수동 외곽으로 밀리거나 떠나는 경우도 포착되고 있다. 10년째 철물점을 운영하는 60대 김모씨는 "과거 성수동에 많았던 수제화, 인쇄소는 자취를 많이 감췄고 남은 카센터도 줄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정창경 인턴 기자 dbapalw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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