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정당’ 간판 내릴 뻔한 민주당…“탈당은 자유” 뒷수습 막전막후
4·10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을 뒤흔든 ‘공천 파동’엔 소리 없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이 기간 유난히 의원들과 후보자들에게 많이 거명된 한 사람, 홍익표 원내대표입니다. 서울 서초을에 출마해 단수 공천을 받은 홍 원내대표가 왜 공천 파동의 주인공이냐구요? 한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빌려 보겠습니다.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탈당을 최소화하고 분당을 막은 건 홍익표 덕분 아니었을까. 이번에 다시 봤다.” 논쟁적 공천을 두고 당내에서 국지전이 터질 때마다 홍 원내대표가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확전을 막아왔다는 평가입니다.
물밑 ‘통합’ 나선 홍 원내대표의 바쁜 하루
실제로 12일 출범한 민주당 ‘정권심판·국민승리 선거대책위원회’는 홍 원내대표의 물밑 노력이 아니었다면 첫 발을 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최악을 치달았던 당내 갈등을 봉합하고 서둘러 선대위를 발족하려 지난 10일 홍 원내대표는 평소보다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기자들에게 공지된 홍 원내대표의 공식 일정은 단 하나입니다. ‘오후 3시 이광재 분당갑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하지만 실제론 아침 7시부터 심야까지 물샐 틈 없이 일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마음이 돌아선 이들의 발길을 돌리려 부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요일인 지난 10일 아침 7시, 홍 원내대표는 여느 주말처럼 지역구인 서울 서초에서 지역 주민들의 행사장을 방문하거나 교회 예배 등으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낮 3시엔 성남 분당갑의 이광재 후보 요청으로 그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었습니다. 지난달 원칙 없는 공천을 비판하며 최고위원회의 거부를 선언했던 고민정 최고위원을 만나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30분 동안 고 최고위원과 대화를 나눈 홍 원내대표는 ‘지금은 작은 의견 차이를 뒤로 하고 가용 가능한 모든 힘을 합쳐야 한다’며 지도부 복귀를 설득한 걸로 전해집니다.
고 최고위원이 마지막 고심에 들어가자, 홍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에게도 부탁해 그날 밤 이 대표가 직접 요청하는 모양새를 만들었습니다. 이 대표까지 나서서 부탁하자 고 최고위원은 11일 아침 최고위 회의에 복귀했고,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거대한 윤석열 권력 앞에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이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고위원 한 명의 거취 문제지만, 지도부 가운데 유일한 비주류로 쓴소리를 해온 고 최고위원의 복귀는 봉합 국면의 상징적인 장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 최고위원을 만난 홍 원내대표는 10일 저녁 곧바로 인천국제공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범인 도피”라는 비판 속에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몰래’ 출국하자 급히 현장을 찾은 겁니다. 민주당 의원 30여명과 함께 공항을 찾은 홍 원내대표는 현장에서 “대통령은 피의자 혐의를 받는 이 전 장관을 외교관 신분으로 해외 도피 시켰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했습니다.
바쁜 하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역으로 복귀해 주민 모임을 찾은 홍 원내대표의 이날 마지막 일정은 심야 비공개 회동이었습니다. 사실상 공천에서 배제(컷오프)된 뒤 당의 결정을 수용하고 두문불출해온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겁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이 만난 건 위로의 성격도 있으나, ‘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자리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역할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임 전 실장 역시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을 평가하고 준열하게 심판하는 선거”라는 데 공감했고,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걸로 보입니다. 이튿날인 11일 임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모두가 아픔을 뒤로 하고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호소드린다”고 했습니다. 대신 그는 “감투도 의전도 형식도 원치 않는다”며 선대위 내부의 역할은 에둘러 고사했습니다.
‘명문 정당’(친이재명계와 친문재인계가 화합하는 정당)이라는 퍼즐의 주요 조각이었던 고 최고위원과 임 전 실장의 마음이 기울지 않았다면, ‘혁신, 통합, 국민참여, 정권심판’을 콘셉트로 삼았다는 선대위는 출범하기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컷오프에 반발해 탈당도 불사할 것으로 보였던 변재일 의원(5선) 역시 홍 원내대표가 적극 설득에 나섰고, 결국 당에 남아 충청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했습니다.
‘원칙 없는 공천’ 막으려다 친명계의 화살 맞기도
그가 ‘갈등 봉합’에만 골몰했던 건 아닙니다. 홍 원내대표가 당내 ‘공천 전쟁’의 전면에 나선 건 4주 전 무렵입니다. ‘현역평가 하위 20% 자료 열람’ 등을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에 요청하며 당내 공천 논란의 확산을 막으려 했으나 임 위원장이 이를 약속하고도 하루 만에 말을 바꾼 탓입니다.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들의 대표인 만큼 의원들이 ‘불공정하다’고 반발하는 대목에서 의혹을 해소하려 했으나 이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이즈음 홍 원내대표는 전에 없이 격앙된 분위기였습니다. 그는 임 위원장에게도 직접 불쾌감을 토로했고, 지도부 회의에서도 ‘원칙이 무너진 공천’에 대해 거듭 문제 제기를 해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주류 일색’인 지도부에서 홍 원내대표의 목소리를 소수파의 의견에 그쳤습니다. 되레 원외 친명계 그룹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홍 원내대표를 겨냥해 “사천하지 말라”는 논평을 내어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일부 친명계 의원들이 공천권을 쥔 것처럼 원외 인사들에게 ‘여기 출마해라, 저기 출마해라’ 조언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비주류 의원들 사이에서도 홍 원내대표가 좋은 소리만 들은 것은 아닙니다. 일부 비주류는 “홍익표가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도 압박했지만, 홍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와의 ‘투톱 갈등’이 극단으로 비화할 경우 당의 총선 대오가 완전히 망가질 것을 우려해 왔습니다. 한동안 “선대위에 참여하지 않고 어려운 서초을 선거에 집중하겠다”고 말해온 그가 결국 선대위 합류를 결정한 것도 그 연장선에서의 결정인 걸로 보입니다.
3선인 홍 원내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서초을을 뜁니다. 민주당계 정당이 한 번도 당선된 적 없는 보수의 아성에서 신동욱 국민의힘 후보와 겨룹니다. 생환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원내대표로서의 역할은 정치인 홍익표 서사의 ‘마지막 장면’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난달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홍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반기를 들고 마지막까지 싸우면, 당을 죽일 수도 있고 당이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물러설 수밖에 없다.” 싸울 때 싸우고,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정치인은 많지 않습니다. 원내대표 이후, 홍익표의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될지 궁금합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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