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크게 잡아 좋게 생각, 나도 응원하겠다” 스미레와 첫 대국 이후, 박정환이 남긴 응원의 메시지
11일 경기도 성남시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린 나카무라 스미레 3단과 박정환 9단의 제5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 본선 2라운드 대국. 이날 대국은 박정환이 2시간59분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대국 후 분위기는 훈훈했다. 어릴 때부터 박정환을 ‘우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스미레, 그리고 그런 스미레를 오랜만에 만나는 박정환은 대국 후 복기를 하면서 여러가지 의견을 나눴다.
둘이 처음으로 인연이 닿은 것은 5년 전 3월, 한 언론사와의 합동 인터뷰에서였다. 당시 10살이던 스미레는 일본기원의 영재 특별채용을 통한 정식 프로기사 입단을 1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꼬마 아이였던 스미레를 위해 박정환이 무릎을 꿇고 찍은 사진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스미레는 지난 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정환과 대국하는 것에 대해 “대국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쁘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스미레를 오랜만에, 그것도 반상을 사이에 두고 만난 박정환의 기분은 어땠을까.
대국 후 기자와 만난 박정환은 “초반은 만만치 않은 흐름이었다. 이후 패싸움이 진행되면서 팻감이 좀 적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분위기가 괜찮아졌다”며 “초반에 (백이) 패에서 좀 손해를 봤다고 생각을 한다. 그 다음부터는 승부를 걸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총평했다.
스미레가 설레는 마음을 드러낸 것처럼, 박정환도 이날 대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정환은 “나를 그렇게 봐주고 있으니까 상당히 영광스러운 마음이었다”며 “그래서 실망스러운 대국을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많이 준비했다. 승패를 떠나, 좋은 내용의 바둑을 둘 수 있기를 바랬다”고 말했다.
5년 전 꼬마아이였던 스미레와 함께 인터뷰를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반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 승부를 벌이는 입장이 됐다. 박정환은 “(스미레와 대국을 한다고 하니) 확실히 긴장되긴 했다. 하지만 스미레에 비하면 그 정도가 덜했다고 생각한다”며 “스튜디오 대국을 많이 해보지 않은 스미레가 더 많이 긴장하고 부담이 돼서 오늘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고 스미레를 감쌌다. 이어 실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이 대국을 하면서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본다”며 “한국에서 충분히 실력을 쌓는다면 훗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세계 무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날 대국 후 복기하는 과정에서 양 기사 중 누구도 쉽사리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스미레와 박정환 모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스미레가 먼저 말을 꺼내며 복기가 시작됐는데, 이후로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심도있는 분석을 했다. 박정환은 “난 복기할 때 혼자 주도해서 하지 않고 의견을 함께 나누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바둑적인 부분에서 내가 질문을 좀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박정환은 스미레가 앞으로 더 강해지기 위한 조언도 이어갔다. 박정환은 “일단 초반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인공지능(AI) 공부가 많이 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면서 “하지만 AI 공부로는 중반 이후나 판단 문제 등에 한계가 있다. 그런 부분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한국에서 강한 기사들과 시합을 많이 하면서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스미레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스미레가 5년 안에 여자랭킹 2위에 도전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박정환은 “열심히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목표를 크게 잡은 것에 대해 상당히 좋게 보고 있다”며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적응하기 어려울텐데, 잘 견디면서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기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많이 응원하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성남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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