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내 자리 말뚝 박는 은밀한 기술'…이 오랜 처세 교과서에 다 나온다

심영구 기자 2024. 3. 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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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익숙한 단어들.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 말들은 우연히 생길 수 없는 단어 구조를 가졌습니다.

이 고대 사상가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설림> <내저설> <외저설> 편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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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중국고전] 한비자 : 정치적 인간의 우화 (글: 양선희 소설가)


역린(逆鱗), 누란(累卵)의 위기, 모순(矛盾)…

아주 익숙한 단어들. 누구나 생활에서 수시로 사용하는 말일 겁니다. 집, 사람,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말이죠.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 말들은 우연히 생길 수 없는 단어 구조를 가졌습니다.

거꾸로 박힌 비늘, 계란을 쌓아 올린 모습, 창과 방패. 문학적·철학적 상상력과 일상의 사물에서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만들어 낼 수 없는 조어입니다. 당연히 연원이 있지요. 바로 한비자(韓非子)입니다.

이 고대 사상가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 궁중 고장극을 보고 있노라면, '법가의 향연'입니다. 배우들의 대사엔 한비자 속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우리나라 궁중사극에서도 한비자의 어느 대목이라도 인용되지 않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고대인 한비자가 스토리를 다루는 방식은 대단히 독특합니다. 그는 전형적으로 현대 언론인의 글처럼 쓰고 있거든요. 한비자의 글은 가정과 비유를 통해 관념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피력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팩트(fact)에 근거해 사상과 주장을 피력하는 점이 그렇습니다. 앞에 예시한 역린, 누란, 모순을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구체적 사물로 복잡한 상황과 현상을 촌철살인하며 한마디로 설명하죠.

(왼쪽)한비자 초상화 (오른쪽) 중국 호남성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나라 시절 [한비자] 인쇄본. / 사진:위키피디아


한비자에는 상당한 분량의 '스케치' 글도 있습니다. <설림> <내저설> <외저설> 편이 그렇습니다. 스케치란 일어난 사건이나 사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언론글입니다. 가십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스케치들은 한비자의 칼럼 여기저기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깨알같이 취재해 모으고, 유머러스하게 정리한 이 스케치들은 내용으로 보면 '정치적 인간의 우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람은 둘 이상만 모이면 정치가 시작되죠. 한비자는 바로 그 지점의 '정치적 인간'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끝없이 싸우고, 서로를 비난하는 데 열정을 불태우고, 뻔한 거짓말을 진지하게 공약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때론 어이없고 때론 넌덜머리 나는 요즘. 한비자가 들려주는 '정치적 인간'의 본색을 탐구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먼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인간은 어떤 짓까지 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1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정벌했다. 하지만 천하가 자신을 탐욕스럽다고 말을 할까 두려워서 숨어서 사는 은자인 무광에게 천하를 양도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선 또 무광이 이를 받아들일까 두려웠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무광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탕이 왕을 죽이고 그 악명을 그대에게 떠넘기고 싶어서 천하를 그대에게 양위하겠노라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무광은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2.
진나라 무왕이 장수 감무(진나라의 재상까지 지내는 초나라 출신의 정치인)에게 벼슬인 복(시종)이나 행사(行事,외교의전업무) 중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라고 했다. 맹묘가 감수에게 말했다.

"공의 입장에선 시종이 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공의 장기는 외교의전에 맞습니다. 공께서 복을 한다 해도 왕은 결국 외교 일을 시킬 것입니다. 공은 시종의 인장을 지니고 행사를 할 것입니다. 두 개의 중요한 관직을 겸하게 되니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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