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불편해도 괜찮아… 여긴 책에 진심이야

장상민 기자 2024. 3. 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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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다른 매력의 동네책방들
손님 인원제한·예약비 받기도
촬영금지·찾기 불편해도 인기
단골들 “오직 책에만 집중했다
서점 가는 길, 마치 여행 같아”
서울 용산구 해방촌 언덕에 자리잡은 서점 고요서사를 방문한 손님들이 책을 둘러보고 있다. 고요서사 제공

넓은 매대도, 편히 앉을 수 있는 공간도, 한 잔의 커피도 없다. 신속함과 편리함의 시대, 불편함을 고수하는 서점들이 있다. 한 공간에서 책부터 음반, 커피와 심지어 칵테일까지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서점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책을 향한 진심으로 고집스럽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내는 조금은 불편한 동네 책방들을 돌아봤다.

다다르다

◇책을 보려면 “줄을 서시오” “돈 내고 예약도 하시오”

최근 대전 중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다다르다’에서는 다른 동네 책방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목격되고 있다. 2층에 자리한 서점 공간에서 책을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1층 공간에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손님이 책을 살펴봐야 책을 구매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법인데, 서점 ‘다다르다’는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손님이 많아지더라도 동네 서점만이 줄 수 있는 공간의 여유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서점을 운영하는 아멜리에와 라가찌 부부는 무조건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서점 대신 적정 인원이 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선택했다. 2층에서 책을 살펴볼 수 있는 인원은 스무 명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인원은 순서를 기다리도록 안내하고 있다.

인근 대학교에 다니며 ‘다다르다’를 자주 찾는다는 한 손님은 “오랜만에 왔는데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꽤 놀랐다”며 “그래도 기다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못 할지 몰라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고 답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블루도어북스’는 예약해야만 들어가서 책을 읽고 구매할 수 있는 서점이다. 예약도 단순한 예약이 아니라 두 시간당 2만 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후기는 칭찬 일색이다. “경험한 적 없는, 오로지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서 재방문 의사를 강하게 나타내기도 했다.

◇“찰칵?” 촬영은 곤란합니다

예쁜 책 표지와 감동적인 글귀 한 줄을 저마다 SNS에 전시하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현대인의 필수가 됐다. 하지만 다다르다는 단호하게 ‘촬영 금지’를 요구한다. 서점지기 라가찌는 “책 사진을 찍지 않는 것도 하나의 규칙”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도 사진 촬영은 금지다. 서울 마포구의 서점 ‘오케이어 맨션’도 최근에야 사진 촬영을 허용하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 얼굴이 나오지 않을 것”, “촬영 소리는 매너 모드”라는 단서 조항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서점에 갔느냐’, ‘어떤 책을 좋아하느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SNS 시대, 책을 전시용으로 소비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의 한 서점 대표는 “책 한 권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한 결과물”이라며 책을 사진 한 장 찍고 내려놓는 건 노력을 훔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저작권 문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니은서점

◇커피? 빵? “서점은 책 파는 곳, 책으로 승부 보겠습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니은서점’에는 책 말고 다른 건 없다. 여러 동네 책방이 커피와 빵, 심지어는 술을 팔지만 ‘니은서점’의 ‘북텐더’는 오로지 책만을 추천한다. 서점을 운영하는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클)에서도 스스로 서점의 불편함을 인정했다. 지난 주말 서점 앞에서 만난 20대 단골손님에게서 서점의 첫인상을 들을 수 있었다. “저는 원래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사 온 동네에 서점이 있길래 가봤더니 무슨 사상서 같은 것만 잔뜩인 거예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책을 샀는데, 그게 시작이었죠. 지금은 단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말 노 교수의 말처럼 ‘혹시나 하는 마음’이 그를 사회과학의 세계로 이끈 셈이다. ‘오케이어 맨션’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북카페가 아닌 ‘서점형 카페’로 정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케이어 맨션’에서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려면 구매해야 한다. 물론 스스로 가져온 책을 음료 주문 후 읽을 수도 있다. ‘오케이어 맨션’을 운영하고 있는 김은경 대표는 “적어도 파는 책을 도서관처럼 둘러보면서 읽지는 않게 하고 싶었다”며 음료가 아니라 책에 집중하고자 하는 진심을 나타냈다.

◇“좁아요, 멀어요, 일단 들어와 보세요”

서울 용산구의 고요서사는 해방촌 언덕배기에 위치한 서점이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고요서사를 운영하는 차경희 대표는 2015년 책방을 준비할 당시를 회상하며 “저는 편집자로 오래 일했어요. 책을 팔아서 돈을 벌고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해방촌은 현실적인 선택지였죠”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작은 공간이 옹기종기 예쁘게 꾸며져 있으니 50대 이상의 손님들은 카페인 줄 착각하며 ‘이런 데 저희도 들어가고 되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작은 공간이 편히 책을 읽거나 살펴보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 자연스레 책방지기와의 거리감도 가까우니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나오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고요서사에서 책을 사서 나오는 한 독자의 이야기는 달랐다. “저 작은 공간이 문학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생각을 해보세요. 멋지지 않나요? 정류장에서 떨어져 있어, 시끄러운 이태원 거리와 멀다는 점도 좋아요. 마치 서점을 찾아오는 길이 여행을 오는 길과 같죠.”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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