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플러팅? 나는 양말을 벗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4. 3. 1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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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남 눈치 보지 않고 맨발로 걷기

시간이 되면 가급적 산에 가려고 한다. 그날은 쉬는 날이었고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오전을 보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녁까지 침대 밖을 떠나지 못할 것 같아 옷을 갈아입고 주섬주섬 양말을 신었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데는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뒷산으로 향했다. 역시 나오기가 어렵지, 일단 나오면 "좋다, 좋다, 참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바람도, 햇빛도, 공기의 온도도 적당한 날씨. 깔딱 고개만 넘으면 산길은 대체로 평지다. 산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산책 코스. 

그런데 이날은 땅이 좀 묘했다. 자꾸 내 눈길을 끄는 것이.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이라도 받은 양 땅이 반들반들해 보인다. 뭐냐 너는. 이런 게 플러팅(보통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유혹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 SNS에서 유행하는 표현)인가. 그날의 감정을 설명하기에 '플러팅'이란 표현이 딱 적절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양말을 훌렁 벗을 리가 없지.

반들반들한 땅이 말을 걸었다. '일단 한번 맨발로 걸어 봐'라고. 응답하듯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그래, 너처럼 이런 땅이면 맨발로 걸어볼 수 있겠어' 그렇게 나는 땅의 플러팅에 홀랑 넘어가 버렸다. 일단 오가는 길목을 확인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 이때다. 운동화를 벗고, 벗은 양말은 운동화에 끼워 넣었다. 

처음 맨발로 걷던 날. ⓒ최은경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을 땅에 한 발씩 디뎠다. 뭐지? 이 느낌? 뭐야, 굉장히 시원한데? 땅과 접하는 맨살은 불편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보드랍고 시원했다. 오감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넓은 황톳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생각났다. 이래서였어? 이런 기분이라고? 신기해서 폴짝폴짝 뛰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무게감이다. 똑같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 발인데 운동화를 신은 나보다 맨발의 내가 더 가볍다고 느꼈다. 몸이 가벼워지니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도 가볍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다니까. 누군가 맨발로 걸어서 좋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이 점을 꼽으리.

길이 부드러워 발이 아프지 않으니 계속 걸어봤다. 해가 많이 드는 곳은 흙이 적당히 바삭거렸고 따뜻했다. 흙이 내 발을 감싸는 것 같았다. 나무 그늘이 있는 쪽은 적당히 말랑거리고 보드라웠다. 바삭거림과 말랑거림의 반복이 나를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동안 산을 다니면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종종 보긴 했지만 내가 그걸 하게 될 줄이야.

신기한 건 한 번이 어색했을 뿐 두 번도 하고 싶더라는 것.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좋아서다. 고백하건대 땅에게 플러팅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때는 그냥 무시했다. 남의 눈치 살피느라 양말을 벗기가 주저되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였는데... 

신이 나서 걸으면서 찰칵찰칵. ⓒ최은경

그날의 짧은 코스가 다소 아쉬웠던 나는 지난 주말 산에 가게 되었을 때도 양말을 벗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오가는 이들이 많았지만 누가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전보다 꽤 긴 코스를 맨발로 다녔다. 저 건너편에서 맨발로 오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동지라도 되는 양 속으로 반가운 내색을 했다. 맨발로 걷는 나를 본 어느 어르신 부부는 "맨발로 다니면 건강에 좋지"라는 덕담도 해주셨다.  

맨발로 걷는 걸 전문용어로 '어싱'이라 한단다. 실제로 건강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간증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맹신보다는 적당히 참고만 하면 좋겠다. 나는 겁이 많아서 맨질맨질한 땅만 걷는데, 전문가들은 돌이 많은 곳이나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많은 곳은 파상풍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며 걷기를 당부한다. 산에 가면 좋은 점이 너무나도 많지만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다. 널리 알리고 싶은 즐거움이다. 날이 좋든 안 좋든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우리 아이들도 알게 되면 참 좋을 텐데... 

첫날엔 흙이 거의 안 묻었는데... 두 번째는 좀 묻었다. 그새 땅이 녹았다는 증거. 벌레 나오기 전에 열심히 맨발로 걸어야지. ⓒ최은경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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