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②'1,500억대 부동산 사기' 경찰 수사…사기공화국에서 살아 남으려면
SBS 시민사회부 취재팀은 1,500억 원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부동산 투자업체를 <8뉴스>에서 보도했습니다. 업체 대표와 직원들이 300명 넘는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취재파일]로 더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부동산 투자업체 대표 A 씨와 직원들, 유명 부동산 정보업체 대표 B 씨를 사기와 유사수신 혐의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에 부동산 투자업체를 세워 놓고 피해자 300여 명에게 1,5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금 명목으로 받았습니다. 이들은 투자 받은 돈을 다양한 부동산 투자로 부풀려 돌려주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자와 원금까지 돌려받지 못한 투자자들은 경찰서를 찾아가 고소장을 쓰고, 언론에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수사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추가 고소장이 접수되는 등 피해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취재파일②>를 통해서는 일당의 사업 구조를 파헤쳐 보고, 투자자들이 왜 피해를 당했는지 짚어보려고 합니다. 지난 4일 방송된 <8뉴스> 리포트를 통해 자세한 사건 내용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단독] 40년 모은 돈인데…카페까지 차려 둔 부동산 투자 업체, 알고 보니 (풀영상)
[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135894?ntype=RANKING&type=journalists ]
고층 빌딩 + 1층 카페 = 부동산 기업?
피해자 중에는 의사, 변호사, 법무사 등 전문직 종사자뿐 아니라 유명 연예인도 있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판을 안다는 사람들도 피해를 당한 겁니다. 취재진은 '피해자들이 왜 이들에게 투자했을까?'를 핵심 취재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피해를 당한 이유를 알아야 전체적인 범행(일당은 '사업'이라고 주장)의 구조를 파헤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이유 없이 투자하진 않았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볼 때는 이런 부분이 의심스러운데, 당시에 왜 투자를 결정하셨을까요?"라고 물어봤습니다. 피해자들의 대답 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카페와 회사 건물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카페를 차려 놓고 거기에서 부동산 투자 상담을 받았어요"
"카페에서 '부동산 보상 투자 달인'이 와서 강의도 했습니다"
"1층 카페에서 상담 받은 뒤에 바로 위층 사무실로 올라가서 계약했습니다"
"카페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임대였습니다"
"젊은 직원 수십 명이 회의한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바쁘게 일하더라고요.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싶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업체가 운영한 '부동산 카페'와 직원 수와 건물 등 회사 규모를 보고는 번듯한 기업으로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A 씨가 운영하던 부동산 투자업체의 법인 등기에는 '커피 음료업'도 함께 등록돼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카페 벽에는 부동산 투자 정보가 가득했습니다. 해당 카페는 서울 송파구와 마포구 등에 있었는데 포털 사이트 블로그 등에는 '신개념 부동산 카페'로 바이럴 마케팅이 되고 있었습니다. A 씨 등은 카페에서 투자 상담을 받았고, 공범으로 혐의를 받고 있는 B씨 등을 초청해 투자 강의까지 개최했습니다. 딱딱한 사무실 책상에 피해자들을 앉혀 놓고 돈 얘기를 꺼내기보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카페 소파에 앉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업체는 1층에 카페를 두고 위층으로는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 층만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해당 건물의 나머지 층 모두를 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피해자들은 해당 업체가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번듯한 투자 기업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사무실은 모두 임대였습니다. 일당은 사무실 임대료도 제때 내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카페와 건물이라는 외관에 피해자들은 속았던 겁니다. A 씨와 같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B 씨의 존재도 피해자들을 현혹했습니다. B씨 는 리포트와 <취재파일①>에서도 소개해드렸지만,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진행한(그 기사가 여전히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부동산 투자의 달인이었습니다.
부동산으로 '단타'가 가능한가
그 회사가 믿을만해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 회사가 파는 물건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피해자들은 외관에 속아 이들이 파는 물건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당 투자 업체는 피해자들의 돈으로 '대리 투자'를 해주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이자 명목으로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은행법에 따른 인가를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모았기 때문에 사실 이미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체가 내세운 부동산 투자 상품은 크게 3가지입니다.
①토지 보상 투자 공공기관 건설, 민간 아파트 착공, 재개발 등 각종 좋은 이슈가 있는 땅을 선점하고 이후에 높은 가격에 되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각종 규제에 앞으로 개발 전망 정보까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투자 장벽이 높습니다. 보상이 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식의 투자입니다. 단, 보상을 받게 된다면 주장하는 것처럼 수익은 높을 수 있습니다.
②부동산 경공매 투자 어려운 부동산 경매나 공매를 투자자들의 돈으로 대신해 준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이 경공매에 나설 물건을 업체가 지정해 주는 식이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돈만 받고 경공매 물건의 선택은 업체가 지정하는 방식입니다.
③SCR(부동산 단기 투자) 업체가 피해자들에게 제시한 투자 상품 중 가장 의문스러운 것이 바로 이 SCR로 지칭되는 상품입니다. 심지어 무엇의 약자인지 투자자도, 일했던 직원도 알지 못했습니다. 업체는 '부동산 단기 수익형 투자'라고 피해자들에게 이 상품을 소개했지만, 돈이 어디로 들어가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이 업체에서 일했던 전 직원 C씨도 "SCR 상품 같은 경우에는 어느 것 하나 특정 되는 게 없었다. 어디에 투자를 하는지 목적도 분명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한 달 후에 3%의 이자를 준다 정도의 내용밖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상품의 경우 한 달에 3~5%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피해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 정도 투자 상품이 있다면 왜 기업이 직접 투자하지 않고 투자자들과 기회를 나눠 가졌는지 의문입니다. 또 수많은 변수가 개입되는 부동산 시장에서 '한 달 만에' 돈을 벌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사기공화국'에서 살아 남으려면?
경찰은 '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투자리딩방 사기, 연애빙자 사기(로맨스스캠), 스미싱(미끼문자) 등 조직적 신종 사기를 포함해 '10대 악성사기'를 선정하고 전방위적인 근절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악성사기를 특별단속하고 사기 피의자 검거, 범죄수익의 적극적 추적과 보전 등이 주된 계획입니다. 실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다른 범죄는 줄고 있는데, 사기 범죄만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약 23만 건에서 2022년 약 32만 6천 건으로 41%나 증가했습니다. 전체 범죄에서 사기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도 13.9%(2017년)에서 22%(2022년)으로 상승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기와의 전쟁'을 치른다는 목표로 적극적인 사기 피의자 검거 활동은 물론 사기범죄 동향 예측·분석을 통한 추가 피해 차단, 범죄수익 적극 환수를 아우르는 종합 대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전방위적인 사기 대응과 함께 사기죄 양형기준 대폭 강화, 범죄수익금 환수에 대한 사법 절차 개선 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지만 모두 사후적 조치입니다. 결국 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가들은 얼마나 번듯한 사무실과 그럴듯한 사업 자료로 우리를 현혹한다고 하더라도 '사기공화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의심을 넘어서 불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정지웅 변호사(경실련 시민입법위원회 위원장)는 "높은 이자를 준다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라며 "'세상의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이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변호사 생활하다 보면 다양한 사기 사건을 접하는데, 사기의 매개체만 다를 뿐이지 매력적인 무언가로 사람들은 현혹해서 돈을 당겨온다는 그 구조는 똑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주변에 수익을 거뒀다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무작정 투자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비슷한 사기 사건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사기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지인 등 다른 누군가는 높은 수익을 거뒀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에 가서 피해가 몰리는 것이 '폰지 사기'의 전형적인 결말입니다. 또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서면보다 대면, 구두를 통해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드시 투자 받는 대상이나 업체에는 내 돈이 어디에 투자되고, 실제 투자는 됐는지, 수익은 언제 발생하는 지에 대해 계약서 등 명확한 서류로 통해 확인받아야 합니다. 사기를 당하면 한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를 무너뜨리는 사기 범죄를 하루아침에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대책들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사공성근 기자 40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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