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한 문성곤, 사냥개 이빨 다시 드러낼까?
국내 최고의 수비형 포워드 아니 수비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문성곤(31‧195.6cm)이다. 데뷔 이후 단 한번도 두자릿수 평균 득점을 넘어본 적이 없으며 커리어하이가 8.96득점, 통산 평균이 5.94득점에 불과하지만 리그 탑포워드를 거론할 때 빠지지않고 언급된다.
그만큼 승리에 공헌도가 높기때문으로 최준용, 송교창, 안영준, 양홍석에 해외파 이현중, 여준석 등 빅포워드 전성시대 속에서도 당당히 경쟁력을 뽐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지도자들이 선호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FA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많은 팀들이 눈독을 들인 것을 비롯 계약기간 5년 첫해 연봉 7억 8000만원에 수원 KT로 이적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현재 문성곤은 데뷔후 치른 331경기에서 평균 5.92득점, 1.58어시스트, 4.21리바운드, 1.47스틸을 기록중이다. 포워드로서 리바운드, 스틸 등에서 준수한 성적을 남기고있지만 문제는 득점이다. 궂은일 위주의 플레이어라는 점을 감안해도 주전급으로 보기에는 많이 낮다. 그렇다고 효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경기당 3점슛을 1.13개 던지고있는데 성공률은 31.32%에 불과하다. 슈팅시 견제를 잘 받지않는 선수임을 감안했을 때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성곤은 적지않은 승리 기여도를 인정받아 왔다. 자신이 적게넣는 만큼 매치업 상대 혹은 상대팀 자체의 득점력을 현격하게 떨어뜨리며 득실마진에서 플러스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KGC(현 정관장)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직전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강력한 수비를 통해 팀 통합우승에 공헌했다. 7차전까지 접전을 벌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챔피언결정전에서의 상대 SK는 매우 까다로웠다. 객관적 전력에서 KGC의 우세가 예상됐던 것과 달리 플레이오프 내내 뜨겁게 달궈졌던 화력쇼는 알고도 막기 힘들었다.
특히 외국인선수 자밀 워니와 토종 에이스 김선형은 KGC 수비진 입장에서 악몽이었다. 경기내내 끊임없이 림어택을 가져갔고 그 과정에서 다른 선수들의 공간 활용까지 파생됐다. 이에 1차전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KGC가 꺼내든 카드는 문성곤이었다. SK 공격의 중심이자 야전사령관인 김선형을 전담마크하라는 특명을 받고 코트에 나섰다.
“같이 죽자는 마음으로 막았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성곤은 김선형과 이른바 동귀어진할 각오로 코트에 나섰다. 앞선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는가하면 일부러 특정 공간을 열어준뒤 뒷선 선수들과 함께 도움수비를 가는 등 다양한 형태로 괴롭혔다. 나이를 잊은 듯한 활약을 이어나갔지만 결국 김선형도 사람이었다.
주축 선수의 공백 속에서 정규시즌 내내 어깨에 큰짐을 진채 야전사령관이자 돌격대장 겸 토종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홀로 수행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뛰고 또 뛰었다. 30대 중반의 나이를 감안했을때 체력이 방전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리그 최고 수비형 포워드 문성곤이 대놓고 자신을 전담마크했으니 어려움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기록으로도 드러났다. 1차전에서 김선형은 22득점, 6리바운드, 12어시스트로 전방위 활약을 펼쳤다. 반면 2차전에서는 10득점, 2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기록에서부터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슛시도 횟수였다. 1차전에서 15번의 슛을 시도한 것에 비해 2차전에서는 7회에 그쳤다.
문성곤은 동물적인 감각이 빛나는 수비수다. 다양한 스타일의 상대와 맞서다 상대의 장점을 본능적으로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김선형은 리듬을 잘타는 공격수인데 2차전에서의 문성곤은 그런 리듬을 간파하고 자신도 그 리듬에 자연스럽게 몸을 실어 수비의 그림자 속에 목표물을 가둬버리는 모습이었다.
당시 문성곤은 김선형을 철저히 연구하고 코트에 나선듯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김선형이 더욱 무서워진 점은 특유의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살린 플레이에 더해 다양한 페이크 동작으로 쉼없이 수비를 흔든다는 점이다. 문성곤은 김선형의 공격방향을 상당부분 예상하고 나온듯 미리 길목을 차단하는 예측 수비에 더해 여러 가지 페이크 모션에도 좀처럼 속지않았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김선형이 다른 경기에 비해 활약이 줄었던 이유다. 마치 과거 현대와 SK의 챔피언결정전 당시 이상민을 전담마크해 족쇄를 채우던 로데릭 하니발이 연상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물론 매경기 문성곤의 수비가 2차전처럼 잘 통한 것은 아니었다. 김선형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맞서며 족쇄가 허술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6강, 4강처럼 시리즈내내 펄펄 날아다니지 못한 것 만은 분명하며 페이스 역시 확실히 다운됐다.
현재 새로운 팀 수원에서의 문성곤 활약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화려했던 안양 시절과 달리 문길동 이미지가 많이 퇴색됐다. 현재 38경기에서 경기당 22분 55초를 뛰며 평균 5.32득점, 2.13어시스트, 2.95리바운드, 1.76스틸을 기록중인데 스틸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 하락했다.
문성곤은 직전 두시즌간 평균 8득점, 5.5리바운드 가량의 볼륨을 냈으며 3점슛 성공률 또한 33%를 넘어갔다. 공격력이 좋은 포워드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공격에서도 어느 정도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먹고 이적한 새로운팀 KT에서 전체적으로 기록하락이 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은 분명 아니다.
눈에 띄는 것은 출전시간 감소다. 2018~19시즌 이후 문성곤의 출전시간은 평균 30분에 육박한다. 직전시즌에도 30분을 넘겼다. 23분에도 못미치고있는 현재 출전시간은 첫 두시즌 이후 최저수치다. 여기에는 현재 KT의 두터운 포워드 층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FA로 수원과 계약을 할때만해도 주전 3번은 무혈입성일 듯 싶었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경쟁자들이 늘어났다.
시즌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만해도 한희원(31‧195cm)이 문성곤 이상가는 존재감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드래프트 동기이기는 하지만 그간 걸어온 길에서 너무 뚜렷한 차이가 났던 이유가 크다. 한팀의 주전을 넘어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문성곤과 달리 한희원은 여러팀을 오가며 자리잡는 것조차 버거워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KT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뒤늦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문성곤과의 격차는 상당해보였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달라졌다. 한희원은 준수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에서의 약점을 지적 받아왔다. 하지만 KT에서는 수비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올시즌 공수겸장 포워드로서 확실히 스텝업에 성공했다.
그 결과 얼마 전에는 30대의 나이로 국가대표로까지 발탁되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 한희원은 46경기에서 경기당 26분 33초를 뛰면서 평균 8.76득점, 1.13어시스트, 3.48리바운드, 0.83스틸로 커리어하이를 기록중이다. 올시즌 성적만 놓고보면 문성곤보다도 낫다. 수비는 여전히 문성곤의 우위겠지만 공격과의 밸런스에서는 한희원의 활용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겠다.
루키 문정현(23‧194.2cm)도 만만치않다. 문성곤처럼 슈팅에 약점을 드러내고있지만 1~4번까지 마크가 가능한 전천후 수비능력을 갖추고있으며 리딩, 패싱센스가 좋아 컨트롤타워 역할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자신의 역할을 찾지못하고 헤메는 모습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팀에 녹아들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아무리 한희원, 문정현이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하고있다고해도 플레이오프 등 큰경기에서는 검증된 문성곤이 더 믿음직할 수 있다. 가진 툴은 둘에 비해 적을지 모르겠지만 이전팀에서 2번의 우승에 공헌한 경험은 무관 KT가 가장 믿는 무기중 하나다. 주춤한 문성곤이 다시금 사냥개의 송곳니를 드러내고 포효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백승철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