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투항’만 바라는 정부·의료계 치킨게임…“진짜 문제는 이거야”

심희진 기자(edge@mk.co.kr), 김지희 기자(kim.jeehee@mk.co.kr) 2024. 3.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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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커지는 ‘수가 협상’
필수의료 대부분 급여 편입
수익성 낮아 이탈 부추긴셈
외과수술 80%넘는 응급실
수가 낮아 원가보전도 안돼
비급여 많은 분야에 의사 몰려
서울대 의대교수 긴급 비상총회 11일 오후 서울대 의과대학 소속 교수들이 서울대병원 소아병동 CJ홀에서 열린 긴급 비상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총회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충우 기자]
“정부는 대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대화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11일 보건복지부 전병왕 보건정책실장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혔다. 전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언론 브리핑에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날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열린 부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 총회에서 교수들은 정부를 향해 “조건없는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지 3주째가 넘어가고 상급 종합병원의 수술실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는 사실상 실종 상태다.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매번 강조하지만 의료계를 대화의 문으로 불러드릴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의료계 역시 정부를 향해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하지만 사실상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철회’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관계자들은 “정부가 의료대란이 아니라고 하면서 장기전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중증환자와 가족들은 피가 말라가는 상황”이라며 “의료계나 정부나 모두 장기전에 들어가면 자기들이 이긴다면서 환자들만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서울대병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으로 환자가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통령과 만남을 요구했다. 대통령의 결단이 없으면 대화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대치 상황에서 해법은 “차이는 미뤄놓고 공통된 인식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의사 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차이를 드러내지만 건강보험 수가에 대해서는 공통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를 중심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남 논산시 한 보건지소 앞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해당 보건지소 공중보건의 1명이 도내 종합병원으로 파견되며 현재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진 = 연합뉴스]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은 지난 10일 2024년 춘계학술대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1977년 의료보험이 만들어지면서 의료수가가 형성될 때부터 문제가 시작되고 있어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제대로된 열쇠’인 기피과-필수과 균형으로 기피과 전공의가 제자리에 들어가도록 하고, 의사들은 메디칼프로패셔널리즘으로 스스로의 자정을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료계가 제기하는 수가 문제에 대해 정부도 해결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니 의대 정원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 대화를 시작할 여지는 충분하다.

수가와 비급여 문제가 의료계의 인기과와 비인기과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국내 소아청소년과의 진료비 수익 중 급여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한다. 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성형외과를 포함한 일반의원의 경우 100% 비급여로만 진료하는 곳이 1600여개에 달한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외과 등 다른 필수의료 부문도 급여 비중이 훨씬 크다”며 “개원 이래 건강보험 청구 실적이 아예 없는 곳도 1000개가 넘는데 이는 비급여가 이익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말해준다”고 말했다.

급여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으로 국가와 환자 본인이 일정 비율에 따라 분담하는 비용을 말한다. 반면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급여는 국가가 정한 의료 서비스의 가격인 데 반해 비급여는 개별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책정한 금액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각 병의원이 수익성 제고 측면에서 비급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종합병원의 외과 관계자는 “국내 의료수가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지만 통상 의사들의 평균 월급이 결코 적지 않은 것도 비급여 때문”이라며 “정부가 ‘필수’라는 이유로 필수의료 행위들을 대부분 급여항목에 편입시킨 것이 오히려 칼이 돼 붕괴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비급여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필수의료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익성을 좇아 떠나는 인력들을 막아세울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필수의료에서 급여항목의 수가를 성형외과의 비급여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술, 처치 등 행위수가를 100% 유상으로 해서 필수의료에 비급여항목이 없어도 비슷한 수익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전국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과 수술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수가가 낮아 원가 보전이 85%밖에 안되는 상황”이라며 “그러니 누가 외과 의사가 되겠냐”고 말했다.

수가 책정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필수의료와 타과 간 수익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핵심인데,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대로 한정된 지원금을 제시한 후 26개 진료과 간 협의로 이를 나눠갖도록 지시한다면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분배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은 “기피과 수가, 의사 행위료가 지나치게 낮음에도 수십년간 정부가 이를 바꾸지 않은 것이 이번 문제의 핵심”이라며 “기피과와 비기피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가 인상을 포함한 기피 과목에 대해 재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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