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보다 돈 더 벌게 해줘야"…삼성·LG 탈출하는 엔지니어들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황정수 2024. 3. 12.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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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구글, 테슬라, 인텔, 엔비디아.

 2021년 미국 실리콘밸리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놀란 점은 현지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한국 기업 본사 근무 경력을 인정받고 미국으로 건너간 엔지니어들 많았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게 만나본 한국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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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업으로 간 인재들 되돌리려면
韓을 ‘엔지니어 천국’으로 바꿔야
인재가 쌓여야 산업 경쟁력도 높아져
AI·반도체 전쟁 ‘필승’의 조건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 전경. 한경DB


애플, 구글, 테슬라, 인텔, 엔비디아. 실리콘밸리 빅테크와 대형 반도체기업에 일하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2021년 미국 실리콘밸리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놀란 점은 현지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큰 기업엔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1000명 가까운 한국인이 일했다. 샤오펑, 니오 같은 중국 전기차를 알게 된 것도 현지 법인에 근무하는 한국인을 만난 뒤부터였다.

 미국 이직 준비하는 韓 대기업 엔지니어들

한국인 엔지니어들의 출신 배경도 예상 밖이었다.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 스탠퍼드대 등 명문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바로 취업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한국 대기업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한국 기업 본사 근무 경력을 인정받고 미국으로 건너간 엔지니어들 많았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게 만나본 한국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백인은 한국인을 ‘시골 촌뜨기’ 취급하고, 인도인과 중국인들은 똘똘 뭉쳐 한국인을 견제한다고 했다. 의사소통이 편치 않으니 할 말을 다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엔지니어들이 아둥바둥 버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한국보다 월등하게 좋은 근무 환경이다. 웬만한 한국 기업보다 2~3배 많은 연봉에 글로벌 IT 산업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자부심, 기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포부 등이 이들의 버팀목이 된다. 여기에 자녀들에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울 기회를 주고, 큰 세상을 보여준다는 만족감도 크다고 했다. 

이런 메리트 때문에 지금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소속의 적지 않은 한국의 우수 엔지니어들이 ‘미국 이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지니어 유출은 큰 타격

한국 핵심 엔지니어들의 미국 이직은 국가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을 인수하고 엔지니어를 유치해 패권을 쥐게 된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중국 BOE는 현대전자 LCD사업부가 전신인 '하이디스'를 인수했다. 엔지니어들도 빨아들였다. 지금 BOE는 세계 1위 디스플레이업체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 이직을 원천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최근 법원의 전직금지 가처분 인용으로 알려진 SK하이닉스 개발자의 마이크론 이직 사례처럼 위법 행위는 엄단해야 하는 게 옳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국가 핵심 기술의 불법 유출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법을 어기지 않고 미국으로 가는 엔지니어들까지 '기술 유출' 의혹을 덧씌우고 비난하는 건 기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꿈을 안고 삼성전자에서 애플, SK하이닉스에서 엔비디아, 현대차에서 테슬라로 이직하는 걸 막는 건 '상식 밖'이다.

 한국을 '엔지니어 천국'으로 만들어야

인재 유출을 막는 해법은 뭘까. 산업계와 학계에선 한국을 실리콘밸리에 못지않은 ‘엔지니어들의 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기 위해선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건 물론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도 조성해야 한다. 의대에 밀려 빈사 상태인 공대부터 살려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모습. 한경DB


이런 노력이 쌓여야 ‘국가 대항전’ 형태로 진행 중인 글로벌 인공지능(AI)·반도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엔지니어가 의사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은 시스템'이 구축될 때 한국의 제2 전성기, 한국판 엔비디아가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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