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들고 협상할 용기”…우크라 향한 교황의 발언, 역풍 맞았다

2022년 9월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 독립궁전에서 열린 제7차 세계·전통 종교지도자대회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 /로이터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크라이나에 ‘백기’ 등의 단어를 써서 협상 필요성을 제기한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와 동맹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협상을 선호한다”며 교황의 말에 맞장구쳤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스웨덴 가입기념식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우크라이나의 항복은 평화가 아니다”라며 “푸틴 대통령이 이 전쟁을 시작했고 오늘이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런 선택지가 없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나토의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른바 ‘백기 협상’ 발언을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교황은 전날 공개된 스위스 공영 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또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협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는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와 협상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 연합뉴스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격려하며 협상 중재에 관해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년) 2월24일 러시아의 악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방어하려고 일어섰다”며 “기독교, 무슬림(이슬람교도), 유대인들 모두가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군과 함께하는 모든 우크라이나 사제에 감사드린다”며 “그들은 최전방에서 생명과 인류를 보호하고 기도와 대화, 행동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또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살고자 하는 사람과 당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사실상 중재하려면 2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교황의 ‘백기 협상’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럽 국가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도 엑스를 통해 “푸틴에게 자국군을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할 용기를 가지라고 독려하는 것이 어떤가?”라며 “그러면 협상할 필요 없이 평화가 당장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드가스 린케비치 라트비아 대통령도 “악에 맞서 굴복하지 말고 싸워서 물리쳐야 한다”며 “악이 백기를 들고 항복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 연방하원의 아그네스 스트라크 짐머만 국방위원장은 “우크라이나 피해자들이 백기를 올리기 전에 교황은 잔인한 러시아 가해자에게 죽음과 사탄의 상징인 해적 깃발을 내리라고 강력하고 분명하게 요청해야 한다”며 가톨릭 신자로서 부끄럽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FP 연합뉴스

반면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교황의 발언에는 많은 맥락이 반영돼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발언의 핵심은 그가 협상을 선호한다는 것”이라며 반색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도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에 열려 있고 그럴 준비가 됐다고 여러 번 말했다”며 “그러나 불행히도 교황의 발언과 우리 쪽에서 반복해 밝혀온 입장은 우크라이나 정권에 가혹하게 거부당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