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혐오 [세상읽기]

한겨레 2024. 3.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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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반포된 회칙 ‘인간생명’은 가톨릭 생명윤리의 핵심적인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글은 종종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 회칙은 낙태, 불임수술, 산아 제한 정책 등 모든 “인공적인” 피임에 대해 명확한 반대를 드러내고 있다. 인공적인 피임에는 피임구나 피임약 사용도 포함된다. 유일하게 허용되는 것은 “생식 능력에 내재하는 자연 주기를 이용해서 출산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분명 이 교리는 많은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이었다. 그러나 세계가 68혁명이라는 문화적 격변 속에 있던 시기에 ‘생명’의 신성한 가치에 대한 종교적 입장을 재확인하였다는 의의는 있다. 문제는 세계적 규모의 종교가 피임법과 같은 국지적이고 세부적인 문제에까지 교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가, 혹은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 회칙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이 늘어났다. 한스 큉과 같은 신학자들은 그런 불합리한 회칙을 공포한 교황의 교리적 권위 자체를 비판하다가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인류학자 로이 라파포트는 이 회칙을 “지나치게 특수한 규칙의 과도한 신성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여기에서의 신성화란 어떤 대상을 의문의 여지 없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무언가로 만드는 종교적 담론의 작용을 말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특수한 영역까지 신성화하려 한다면, 종교적 담론의 권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성화는 모호하고, 광범위하고,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 유리하다.

반면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으로 인해 변화할 수 있는 가치나 규범은 토론, 논쟁, 합의를 통해 수정해나가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종교가 모든 윤리적 영역에 “마이크로 매니징”을 시도한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가치 판단에 있어 종교를 고려하지 않게 된다. 라파포트는 실제로 ‘인간생명’의 발표 이후 가톨릭 신자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덜 따르게 되었고, 피임 문제와 관련하여 사제에게 고해하는 이들도 거의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나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하라” 같은 신성화된 명제들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해준다. “임신중단은 죄악이며 정관수술이나 루프 삽입술, 콘돔과 피임약을 사용하지 말고 배란주기를 잘 계산하라” 같은 수준의 규칙에 그와 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종교가 구체적 규칙들을 과도하게 신성화하는 일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태아의 생명에 대해 과도한 종교적 신성성을 부여하는 담론(“태아에게도 영혼이 있으므로 낙태는 살인이다”)은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려는 이들에게 ‘신성한’ 죄책감을 부과한다. 나아가 성을 둘러싼 전통적 가치들을 신성화하는 일은 오랜 기간을 통해 인류사회가 합의하고 인정하게 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로 이어진다. 종교가 없으면 여성혐오도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종교는 신성화라는 기제를 통해 혐오를 ‘거룩한’ 것으로 만든다.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종교의 태도와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사건이 두가지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사제들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하였고, 국내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목회를 한 이동환 목사를 출교하였다. 개인이 어떤 부류의 대상에게 애정이나 성적 끌림을 느낄 수 있는지를 종교가 판단하는 것은 명백히 “지나치게 특수한 규칙의 과도한 신성화”에 해당한다. 인간의 성적 지향은 다양하며 치료나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사실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별 없는 사랑, 축복, 환대라는 모호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진실인 가치가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실천되는 편이 옳다.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에 거룩한 종교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건전한 토론을 방해한다.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이들이 모두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은 폭력적인 성적 학대를 승인하는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종교적 규칙이 금지하는 것들은 신자들에게 ‘악’으로 표상된다. 토론의 상대를 악마화할 때 남는 것은 선동과 증오와 폭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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