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커버 디자인에 수억 원 쓰던 시절...힙노시스는 "왜 안 돼?"라고 물었다

고경석 2024. 3.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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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의 오브리 파월 내한
8일 개막한 전시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찾아
핑크 플로이드·레드 제플린·폴 매카트니 등 앨범 디자인
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의 오브리 파월이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 중 하나는 영국 록 밴드 나이스의 '엘레지'(1971) 커버 아트다. 7일 서울 종로구의 전시장 그라운드시소 서촌에 마련된 '엘레지' 대형 포스터 앞에 선 그는 "음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대지 미술(Land Art)로 표지를 만들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경석 기자

“우리는 밴드나 음악을 위해 디자인하지 않았어요. 우리 자신을 위해 디자인했죠.”

‘앨범 커버 디자인계의 비틀스’라 불리는 영국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ipgnosis)의 오브리 파월(78)은 7일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관객과 만나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올해 8월 31일까지 힙노시스가 남긴 주요 작품과 그 제작 과정, 미공개 작품 등을 소개하는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가 열리는 곳이다.

전시에 맞춰 서울을 찾은 파월은 “전혀 모르는 낯선 곳이어서 처음엔 걱정됐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에서 하던 전시와는 달라 새롭기도 했고 내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것 같아 매우 기쁘다”며 웃었다.

핑크 플로이드가 1973년 발표한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의 커버 아트. 유니버설뮤직 제공

힙노시스는 영국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작인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과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를 비롯해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 블랙 사바스, AC/DC, 스콜피언스, 피터 가브리엘 등 당대 최고 음악가들의 앨범을 디자인했다. 록이 황금기를 누리던 1970년대에 자본과 예술이 만나는 곳에서 상상력, 무모함을 무기로 재능을 꽃피웠다.

록 음악에 혁명을 일으킨 비틀스처럼 힙노시스는 앨범 커버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었다. 정사각형 표지를 캔버스 삼아 예술을 실험했다. 음악가의 얼굴과 이름, 앨범 제목은 종종 지웠다. 핑크 플로이드의 ‘아톰 하트 마더(Atom Heart Mother)’ 재킷은 아무 의미 없는 이미지로 채우겠다면서 런던 근교의 목장에서 젖소의 사진을 찍어 넣어 음반사를 당혹게 했다. ‘왜 안 돼?’라는 생각으로 틀을 깼고, 이들의 도전은 새로운 표준이 됐다. “영감은 가사에서 나오기도 하고 밴드의 이미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음악 자체에서 나오기도 했어요. 때로는 전혀 무관한 아이디어로 만들기도 했고요. 팝음악계에 돈이 넘치던 때여서 운이 좋았습니다. 앨범 커버 제작에 5만 달러(현재 가치로 환산 시 약 3억~4억 원)를 쓰던 때였으니까요.”

1964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히피 모임에서 만난 스톰 소거슨(2013년 사망)과 의기 투합한 파월은 3년 뒤 10대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핑크 플로이드의 두 번째 앨범 커버를 맡으면서 앨범 디자인을 시작했다. 1974년 음악가이자 사진작가였던 피터 크리스토퍼슨(2010년 사망)의 가세로 3인 체제로 운영된 힙노시스는 15년간 300개가 넘는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다.

1972년 힙노시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오브리 파월(왼쪽)과 스톰 소거슨. 티캐스트 제공

록의 황금기라는 풍족한 환경 덕에 무모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 60개의 축구공을 들고 갔고,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스턴트맨의 몸에 몇 번씩 불을 붙였다. 훗날 소거슨은 파월과 결별 후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커버를 위해 700개의 침대를 해변으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 파월은 “요즘 같으면 포토샵으로 몇 시간 만에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하면 그 안에 감정적인 것이 담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파월과 소거슨은 환상의 콤비였다. 그룹 내에서 소거슨은 주로 아이디어를 개념화하는 역할을 맡았고, 파월은 사진 촬영과 비즈니스 업무를 담당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만큼 괴짜였던 소거슨은 파월과 성향이 전혀 달랐지만 둘은 늘 논쟁하고 다투면서 최상의 시너지를 냈다. “스톰은 내 형제와도 같았어요. 천재였지만 요즘 관점에서 보면 자폐적인 측면도 있었죠. 유명한 음악가일수록 더 함부로 대했는데 폴 매카트니의 음악과 (당시 그의 아내) 린다에 대해선 비판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카트니는 스톰을 싫어했어요. 스톰이 폭발 사고를 일으키면 저는 불을 끄는 역할을 했는데, 꽤 잘 통했죠.”

힙노시스의 작품에는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파월과 소거슨은 스페인 감독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나 화가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루치안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영향을 자주 언급했다. 소거슨은 종종 꿈에서 본 이미지를 음악적 맥락과 무관하게 쓰기도 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1975년작 '위시 유 워 히어' 커버. 미국 할리우드의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에서 스턴트맨을 섭외해 실제로 몸에 불을 붙여 촬영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미니멀한 그래픽으로 채운 작품도 많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핑크 플로이드의 건반 연주자 닉 라이트가 사진이 아닌 단순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요구한 데 따른 결과다. 소거슨이 물리학 교과서에서 찾은 프리즘 이미지는 핑크 플로이드는 물론 1970년대 록 음악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파월은 “힙노시스의 작품과 관련해 중요한 점은 수십 년이 지나도 구식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의 커버가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힙노시스는 1983년 디자인에서 영상 제작으로 방향을 돌렸으나 2년 만에 파산했다. 홀로 디자인을 이어간 소거슨과 달리, 파월은 크리스토퍼슨과 함께 영상 작업에 몰두했다. MTV, CD의 등장과 함께 음악 산업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해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힙노시스: LP커버의 전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는 오는 5월 영화관에서 먼저 개봉한다.

“광고라면 제품을 보여줘야 하지만 앨범 커버 작업은 그런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죠. 앨범 커버는 단순한 사진 이상이고, 회화 작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해석과 이야기를 만들 수 있죠. 앨범 디자인 작업을 계속하고 싶지만 이젠 예전처럼 할 수가 없어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보는 앨범 커버는 너무 작잖아요. 요즘 음악가들 중에서 작업해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요? 블랙핑크! 하하.”

영국 밴드 10cc의 1980년 앨범 '룩 히어(Look Hear)?'의 커버 촬영을 위해 힙노시스는 하와이 해변으로 날아가 정신과 상담 소파를 놓은 뒤 현지에서 양을 구해 앉혔다. 정작 커버에는 앨범 제목 대신 '아 유 노멀(ARE YOU NORMAL)'이란 문구를 크게 넣고 사진은 아주 조그맣게 삽입했다. 그라운드시소 제공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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