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용산 대장주 기대 산호아파트… "공사비 복병"

정영희 기자 2024. 3. 1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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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1000만원' 시대에 800만원 제시… 조합 측 "입지가 곧 경쟁력"
[편집자주] [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서울 용산구 산천동에 위치한 산호아파트 전경. 1997년 지어져 올해로 준공 47년째인 노후 아파트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자
서울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너도나도 층수를 올리고 있다. 2022년 서울시가 한강 스카이라인에 변화를 주기 위해 '35층 룰'을 삭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압구정과 여의도, 용산 등 한강 조망권에 위치한 아파트들은 최고 70층 설계를 추진하며 몸값을 올리는 시도에 한창이다.


20년 기지개 '용산 산호'… 다음달 시공사 선정


강변북로를 타고 원효로로 빠지면 한눈에 봐도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1977년 준공해 올해로 47세를 맞은 용산 산호아파트다. 원효대교와 맞닿아 있는 만큼 한강과 가까워 조망이 좋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지하철역에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먼 거리지만 1호선 용산역과 5호선 마포역, 지하철 6호선·경의중앙선 효창공원앞역까지 버스로 10여분 소요된다.

지난 4일 방문한 산호아파트는 노후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군데군데 뜯긴 벽과 녹이 슨 창호에서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마쳤음에도 흘러내린 녹물 자국이 그대로였다.

중앙난방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겨울이 되면 난방비 폭탄을 맞고도 따뜻하게 지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이날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수도관 문제로 녹물이 자주 나오기도 하고 2년 전쯤에는 일부 동의 꼭대기층 천장에서 물이 샌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은 "관리비가 타 단지에 비해 많이 나오는 편인데 엘리베이터가 느리고 주차가 불편한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산호아파트는 20여년째 재건축 1순위로 기대를 높여왔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입지만은 최고로 평가받고 일부 가구에선 한강이 보이지 않는 현 구조가 정비사업 이후 전 가구 한강 조망권으로 바뀔 수 있다.
용산 산호아파트 단지 내부. 현재 6개동 554가구이지만 재건축 시 7개 동 647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
서울시가 지난달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재개를 선언함에 따라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 1700%, 높이 100층이라는 특혜를 제공해 호재가 추가됐다. 업무지구에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입주 시 산호아파트는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 근접) 단지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산호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하 '산호 조합')은 현재 12층, 6개 동 554가구 규모인 단지를 지하 3층~지상 35층, 7개 동 647가구(임대 73가구) 규모로 재건축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 용산구청은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위한 공람을 시작해 다음 달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조합은 입찰 참여 시공사가 반드시 최상위 브랜드(하이엔드 등)를 제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놨다. 최근 아파트 브랜드를 일반과 고급으로 분류해 운영하는 시공사가 많아진 만큼 하이엔드 적용을 통한 고급화를 꾀하겠다는 목적이다. 입찰보증금은 120억원, 마감일은 다음 달 15일이다.

지난달 29일 열린 현장설명회에는 DL이앤씨·현대건설·금호건설·호반건설·GS건설·포스코이앤씨·삼성물산 건설부문·HDC현대산업개발 등 8개 건설업체가 참석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서울 주요 입지에 위치한 만큼 관심을 갖고 입찰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GS건설 관계자도 "양질의 입지를 바탕으로 사업성 검토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호아파트 정문 건너편 길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모습은 노후 정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외벽 칠은 상당 부분 벗겨졌고 녹물 흐른 자국이 군데군데 가득했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


낮은 공사비에 유찰 우려도 있어


고분양가를 노릴 수 있는 한강변의 입지에도 시공사 선정에서 유찰을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공사비다.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는 3.3㎡(평)당 830만원, 총액 약 3287억원이다.

지난달 송파구 가락동 가락삼익맨숀은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건설업체 참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해당 단지의 재건축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는 3.3㎡당 810만원이었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하이엔드 브랜드 재건축 단지들의 3.3㎡당 공사비는 최소 900만원대로 알려졌다. '공사비 1000만원 시대'가 열렸다는 말도 흔히 나온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말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 조합에 하이엔드 '푸르지오 써밋' 공사비 3.3㎡당 1070만원을 제시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2차는 2017년 현대엔지니어링과 3.3㎡당 약 500만원으로 공사비를 협의했으나 최근 13000만원대로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브랜드를 종전 '힐스테이트'에서 하이엔드 '디에이치'로 변경한 데에 따른 조치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하이엔드 마감재와 빌트인 가구 등이 고가의 명품으로 시공돼 공사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하이엔드 정비사업 공사비가 최소 900만원대 후반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호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인근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자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인건비와 자재비 인상을 감안해 어느 정도 인상이 불가피하겠지만 금액이 커지면 조합 입장에서 사업 진행이 쉽지 않다"며 "낮은 공사비를 제시할 경우 시공사의 참여가 없어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공사비를 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공사비 상승 시 분담금 증가의 우려도 커진다. 한 조합원은 "3.3㎡당 800만원대 공사비에 하이엔드 브랜드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산호아파트는 과거에도 분담금을 놓고 조합원 내 갈등을 겪었다. 2022년 113㎡(이하 전용면적)를 보유한 조합원이 재건축 후 기존과 유사한 112㎡를 선택할 경우 분담금 7억20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현재 분담금 걱정은 여전하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평수를 늘리려면 최소 몇 억원이 필요해 돈이 없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만 조합 측은 사업성이 좋은 위치인 만큼 시공사 유찰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반포 1·2·4주구와 잠실우성4차 등 재건축 추진 단지 다수가 3.3㎡당 800만원대 공사비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시공사 선정 후 47층으로 설계변경을 추진해 일반분양분을 늘리고 분담금 걱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분양분이 적은 아파트일수록 수익성이 떨어져 조합원에게 분담금을 더 받아야 한다"며 "분양시장이 침체인 시기엔 시공사들도 수주를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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