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은 어디에 내려올까요[꼬다리]

2024. 3. 12.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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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모든 어린이는 신이 인간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땅에 보낸 사신이다.”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정말 천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결과적으로 천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건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종종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와 눈을 마주친다. 그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는가. 뒤뚱뒤뚱 걷는 조카를 바라보는 어른들은 화기애애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에서도 건너편에 앉은 아이와 엄마가 까르르대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화를 씻어내고 미소를 칠하는 것. 천사의 일이 뭐 다른 일일까.

천사의 인구가 감소한다. 이 사회가 천국보다는 지옥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천사가 줄어서 지옥이 되는 게 아니다. 지옥에 가까워질수록 천사의 발길이 끊기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 0.65명. 타고르의 말대로라면, 이 땅을 보는 신의 절망이 그만큼 깊다.

지옥의 선주민인 우리는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다. 노동시간, 집값, 저임금, 성차별, 입시 과열과 사교육비, 유명무실한 육아휴직, 물가…. 너무 많이 나온 이야기들이라 굳이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국사회 자체가 거대한 ‘노키즈존’이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이 풍경을 ‘높으신 분’들만 모른다. 선거철이니 잠깐 아는 척은 할 수 있겠지만, 깊게 들어가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댈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이 모든 비극과 동떨어져 말끔하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출산율 1위는 강남구다. 최근 한 대기업이 출산한 직원 자녀에게 1억원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 몇몇 이들은 ‘우생학의 부활’을 직감했다. 하지만 삶의 터전이 수저에 따라 공간·내용으로 촘촘히 분절된 이곳은 예전부터 우생학의 디스토피아였다.

늘봄학교가 ‘저출생 대책’으로 나온 것 역시, 정책과 현실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야근하는 엄마·아빠의 자녀를 당장 돌봐줄 곳이 필요한 건 맞다. 그러나 그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다. ‘태어날’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살인적 과로사회에 대한 대책이 함께 나왔어야 했다.

현실은 어떤가. 3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은 또 미뤄졌다. ‘주 69시간’으로 떠들썩했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폐기되지 않고 정부의 창고에서 때만 기다리고 있다. 한 해 최소 500명은 과로로 뇌핏줄이 찢어지고 심장이 멎어 죽는다. 수많은 사람은 그래서 늘봄학교의 메시지를 이렇게 읽었다. “아이 낳고 마음껏 야근하세요! 아이는 저희가 돌봐드릴게요.”

지난해 이맘때쯤 이 지면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연간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숫자가 나온 시점이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의 글을 인용해 “우리는 멸망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1년이 흐른 지금, 천사들의 발걸음은 더 뜸해졌다. 닦이지 못하는 슬픔도 점점 늘어날까 두렵다. 그래서 칼럼을 새로 적었다. 멸망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된 것 같아서. 우리는 원하지 않았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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