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이트, 제2의 루닛되나…가상공간에서 배터리 수만번 공짜실험한다

홍순빈 기자 2024. 3.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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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이에이트 대표 인터뷰
이에이트의 'NFLOW' SPH 전처리 과정 및 도심 내 침수 면적 파악을 위한 유동 해석 결과 이미지/사진=이에이트 투자설명서 갈무리


글로벌 IT(정보통신)기업들의 기술격차가 줄어들면서 속도가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같은 제품을 출시하더라도 하루 이틀 사이로 1등과 꼴지가 나뉜다. 효율적인 제조공정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제품을 완성하는데 드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중국기업들이 신기술 확보에서 두각을 보이는 건 물량공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IT업계가 R&D(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인력과 비용은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는 신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을 사전 테스트하기 위해 목업(실물과 같은 모형, mock-up)을 만드는데 한국이 1개를 만들어 테스트하는 과정을 10번 거친다면 중국은 한번에 10개의 목업을 만들어 테스트하는 방식이다. 비용은 같더라도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된다. 중국이 IT를 비롯한 기초과학에서 수많은 특허를 쏟아내는 배경이다.

이처럼 R&D 물량공세는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는데, 최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어 산업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가상목업 기술이다.

세탁기를 예로 들면 가상목업은 세탁조의 회전에 따른 물의 흐름 변화를 현실과 똑같이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현실과 99% 유사한 상황을 구현하면 어떤 회전방식이 빨래를 잘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이를 실제로 해보려면 2시간 코스의 세탁을 수천번 거쳐야 하지만 가상목업에서는 한두시간이면 끝난다.

바람의 변화를 실제처럼 구현할 수 있다면 에어컨 개발도 가능하다. 영역을 넓히면 반도체 설계, 2차전지의 발열과 성능을 테스트하는 단계에 이른다. 가상목업에서 나아가 현실세계를 가상공간에 100% 가까이 구현하는 것을 '디지털 트윈'이라고 한다. 가상공간에서 실험해 사고와 문제점을 미리 예측,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기술개발에 들어가는 시간 뿐 아니라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현실 세계를 가상 공간으로…미래 이끌 '디지털 트윈' 기술
이에이트는 디지털 트윈기술에 특화된 기업인데 입자기반 시뮬레이션이 가능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이전 기술 단계인 가상화, 동기화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에이트의 디지털 트윈 기술은 GPU(그래픽처리장치) 병렬연산을 통한 해석이 가능한 SPH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개별 입자를 추적해 자요로운 움직임을 해석할 수 있어 스마트시티, 자연재해 방지 등 대규모 지형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분야에 적합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 이에이트의 플랫폼은 자체 기술로만 구현되고 있어 외국산 기술을 차용한 다른 플랫폼에 비해 약 30~40%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가진다. 덕분에 국내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차전지, 항공,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트윈 기술을 차용 중인데, 특히 이차전지의 경우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밸류체인(가치사슬)에 적용되고 있다.

김진현 이에이트 대표는 최근 본지를 만나 "설계 데이터를 가상 공간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세탁기 내부에서부터 혈관 내 의료기기 삽입까지 모두 가능하다"며 "디지털 트윈을 도입하면 제품 테스트 기간이 상당히 짧아지니 기업들의 신제품 출시 주기도 단축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에이트의 기술 적용 분야는 무한하다"며 "재난·재해 방지,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등 여러 국책 과제,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기업과의 협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김진현 이에이트 대표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2001년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김 대표는 경제금융학을 전공한 그는 글로벌 IB(투자은행)에서 근무하며 IMF 위기의 후폭풍,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 등 산전수전을 겪었다. 그러던 중 유럽 금융시장에서 디지털 기업들이 주목받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수조원을 들여 기술력 있는 디지털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국은 백신, 보안 등의 기술이 뛰어나긴 했지만 다른 분야에선 디지털 기술력 있는 회사들이 적었다. 이를 주목한 김 대표는 2012년 귀국해 디지털 트윈 전문 업체인 '이에이트'를 차렸다. IT(정보기술) 관련 전공도 아니었던 그는 이에이트 설립이 무작정 시작한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이트는 현재 국내 토종 디지털 트윈 회사로 자리매김해 시장의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김 대표는 "관련 전공을 한 게 아니다보니 우수한 IT·디지털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녔다"며 "글로벌에서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트윈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흑자전환"…코스닥 입성한 이에이트의 행보는?
이에이트는 시장의 높은 주목을 받으며 지난 2월2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미래 시대를 이끌어갈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점으로 기술특례를 통해 증시에 입성했다.

매출액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이트가 IPO(기업공개) 당시 제출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연간 매출액은 △2020년 9977만원 △2021년 1억9760만원 △2022년 3억915만원 △2023년 21억8612만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기술개발, 연구개발 인건비 등으로 지속적인 적자가 발생했다.

김 대표는 올해부터 손익분기점(BEP)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모자금으로 자본잠식 상태가 해소되면서 연간 영업이익 3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우럴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과 해외 기업들과의 협업으로 향후 성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그는 "매년 들어가는 고정비용이 거의 일정해 올해부터 흑자전환할 것"이라며 "뇌혈관, 경동맥, 대동맥 등을 포함한 심혈관 의료 시뮬레이션 분야로 사업 수주가 확장되고 해외 진출 전략도 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해외 진출을 본격화했다"며 스마트시티, 팩토리, 빌딩 트윈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했다.

김진현 이에이트 대표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홍순빈 기자 binih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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