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톨레랑스 정신’을 잊은 사회
내년이면 출간 30년을 맞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는 한국 사회에 ‘톨레랑스’라는 개념이자 삶의 태도를 소개한 공이 큰 책이다. 프랑스어 톨레랑스는 한마디로 관용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프랑스 사전은 이 단어를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고 푼다.
홍세화 선생은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싶은 제1 덕목이 ’톨레랑스 정신‘이라면서 톨레랑스를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관용보다는 ‘용인’이라 했다. 타인의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한다기보다는 종교나 사상이 달라도 그 차이 자체를 다른 그대로 참고 수용하는 정신 자세를 가리킨다. 한자로 풀자면 ‘화이부동(和而不同)’에 가깝다고도 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톨레랑스라는 말이 유행했으나 이제는 누구도 이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앵톨레랑스(불용인)’가 더 극성을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해묵은 국가보안법과 지역주의가 불용인을 지배하는 양대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 유구한 역사를 증언하는 예가 박정희 정권 시절 제2차 교육과정기(1963~1974년) 편제에 교과와 동등한 비중으로 들어간 ‘반공·도덕’이다. 반공은 도덕과 한 몸이 되어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이 나라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오랫동안 옥죄었다.
도덕은 100% 맞거나 100% 틀리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 조선 시대 사화(士禍)가 그 적나라한 예다. 인간사 도덕의 영역은 승자독식, 패자 전멸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으로 야기된 이데올로기 대결은 또 어떤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상대편이 옳을 수도 있으니 일정 부분 용인하자는 유보적 생각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무조건 옳고 저들은 다 틀려야만 했다. 이런 승자독식의 공식이 지배하는 가혹한 사회에서 관용은커녕 대립과 증오가 일반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말에서 ‘다르다’가 ‘틀리다’에 맥을 못 추는 까닭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서로 다른 문화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나는 맞고 너는 영원히 틀린 것이다. 다르면 틀린 것이고 틀린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 사법 이전에 도덕이 먼저 처벌을 내리는 사회에서 승자는 완장을 차고 언어를 독점한다.
이 대목에서 소설 두 편이 떠오른다. 이청준이 1971년 발표한 ‘소문의 벽’과 윤흥길 작가가 1982년 내놓은 ‘완장’이다.
‘소문의 벽’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6·25가 일어난 해 가을, 고향인 남해안 포구에서 당한 일 탓에 조현증을 앓아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한밤중에 집에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전짓불을 들이대며 “너는 좌익이냐, 우익이냐?”고 다그치던 공포의 시간이 그의 영혼을 망가트린 것이다. ‘완장’은 작건 크건 권력을 쥔 인간이 보여주는 속물근성과 그 횡포를 풍자한다. 양어장을 관리하는 감시원 완장을 차게 된 건달이 그 알량한 완장의 힘에 도취해 난리를 치다가 그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반공·도덕이 국가 이념과 정책의 기본 방침이었던 시절은 지나갔다지만 그 뿌리는 여전하다는 걸 다시금 되씹게 만드는 소설들이다. 문학의 힘은 바로 톨레랑스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 80억 인구 모두가 모두에게 각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차이를 허심탄회하게 허용해 준다면 세계는 평화로울 것이다. 홍세화 선생의 아버님이 아들 이름으로 꿈꿨던 바로 그 세상이다.
이윤정 (younsim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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