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가 조치” 보고서 낸 공정위…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하나 [심층기획-급발진법 개정 청원 1년]

조희연 2024. 3. 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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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용역서 자동차관리법 개선 제안
입증책임 전환은 불가능하다 결론
사고 당시 증거 확보 중요성 강조
“브레이크 밟아도 질주하는 영상
결함 직접 증거… 법적공방 해볼만”
전문가도 장치 부착 필요성 주장
국토부는 “무역 분쟁 발생 가능성”
제조사 자발적 설치만 권고 ‘미온적’

‘자동차관리법을 개선해 차량 제조사의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급발진 의심 사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실시된 공정거래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운전자가 급발진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차량에 관련 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제조사가 차량에 ‘페달 블랙박스’를 부착하게 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반응이 주목된다.

11일 세계일보 취재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제조물책임법 운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는 “급발진 문제를 제조물책임법으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제조물책임법 외에 자동차관리법도 개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2월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해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아닌 제조사가 차량 결함 여부를 입증하게 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이번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진은 제조물책임법상 입증책임 전환은 불가능하다며 자동차관리법을 개선해 급발진 입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페달 블랙박스’로 결함 입증해야

연구진은 급발진 사고에서 중요한 건 ‘누가 입증할지’가 아니라 ‘어떤 증거로 입증할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해 입증책임을 전환하기보다 자동차관리법을 개선해 급발진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동차관리법은 차량 제조사가 취해야 하는 조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자동차관리법에 ‘제조사의 기술적 조치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보고서가 지칭한 기술적 조치를 ‘페달 블랙박스’로 해석했다. 페달 블랙박스는 엑셀과 브레이크 사이 공간에 설치돼 운전자가 엑셀을 밟았는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기록하는 블랙박스로, 급발진을 입증할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제조사 측은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브레이크와 엑셀 페달을 혼동해 엑셀을 밟은 탓에 차량이 질주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급발진 현상 자체를 부정해왔다.

전문가들은 페달 블랙박스를 통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차량이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영상이 촬영된다면, 운전자 실수가 아닌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 교수(급발진학회장)은 “페달 블랙박스 영상은 급발진의 직접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에 지금 법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며 “급발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구멍을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페달 블랙박스 필요성에 공감하며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윤수현 공정위부위원장은 “자동차 운행기록장치를 부착하거나 브레이크·엑셀 옆에 감시카메라를 장치하는 등 여러 가지 기록장치를 하게 되면 이런(급발진) 사고 발생 원인 규명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국토부와 얘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도 지난해 페달 블랙박스 도입을 자동차 제조사 측에 권고하기도 했다. 당시 국토부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항목 확대도 같이 권고했는데, 이후 지난해 12월 EDR 기록항목을 확대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하고, 올 1월 차량 EDR을 의무화하는 개정법을 공포하는 등 EDR 관련 조치는 법안으로 강화하면서도 페달 블랙박스 입법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국제 표준 없지만 “선제 도입을”

국토부는 페달 블랙박스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면 국제 무역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제 차량 기준에 페달 블랙박스 관련 내용이 없다”며 “우리나라에서만 페달 블랙박스를 의무화할 경우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제조업체에 무역장벽이나 무역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고, 국내 제조업체도 비용 문제로 반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조업체가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설치하기를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2년 12월 강릉 홍제동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연합뉴스
강릉 급발진 사건 등에서 보듯 EDR이 보급되더라도 급발진 입증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강릉 급발진 차량에도 EDR이 설치돼 있지만 급발진 입증에는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페달 블랙박스라는 방안이 제시된 것도 기존에 보급된 EDR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에 소비자 안전을 위해 국제 표준에 앞서 선제적으로 페달 블랙박스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가 나온다.

강릉 급발진 사건을 대리하는 하종선 변호사는 “안전이나 환경 관련 요건을 국제 표준보다 강하게 요구하는 건 무역 장벽이 되지 않는다”며 “일본에서는 테슬라와 도요타가 국제 표준도 아닌 ‘가속제압장치’를 도입했다”고 강조했다.

조희연·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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