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문제 거래 피라미드 조직…'수능 신뢰도' 큰 타격
"평가원, 수능 영어 23번 문항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공모한 정황"
"인력풀 제한된 수능 출제자, 부정 나타날 개연성 커…근본 대책 마련 필요"
사교육 업체와 수능 출제·검토위원으로 참여한 교원간 문항거래를 둘러싼 '검은 유착' 관계가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수능의 공정성과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를 벌여, 교원 27명과 학원 관계자 등 모두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감사원 감사결과, 사교육업체가 수능 출제경험이 있는 교원과 문항을 거래하는 방식이 마치 피라미드처럼 조직적(사교육업체→중간관리 교원→다수 교원)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직 교원이 동료 교원을 끌어들여 문항을 제작하고, 이를 사교육 업체에 팔아넘기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수능·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여러번 참여한 고교 교사 A씨는 출제 합숙 중에 알게 된 교사 8명을 포섭해서 문항 공급 조직을 구성해 6억 6천만 원을 받았다. 고교 교사 B씨는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업체를 공동 경영하면서, EBS 교재 집필 과정에서 알게 된 교사와 자신의 소속 학교 교사 등 35명을 섭외해 문항 제작진을 구성하고, 3년간 18억 9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감사원은 특히 지난 2022년 9월 유명 일타 강사의 모의고사에 나온 영어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시험에 출제되는 과정에 학원 강사와 교원, 출제 교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의 대규모 유착 비리가 작용했을 개연성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은 지문이 대형 입시업체 모의고사 문제와 유사하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해당 안건을 아예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공모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 교육계 인사는 "수능 영어 23번 문제는 상황에 따라서 굉장히 큰 문제로 비화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봉합이 빨리 돼 버렸다"며 "시험의 핵심은 공정성인데, 부정이 개입된 것이기 때문에 공정성의 핵심 가치가 깨진 것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 김종민 의장은 "감사원 감사 결과, 교원과 사교육업체간 문항 거래 등 유착 관계가 확인되고, 수능 이의신청을 국가기관이 거짓을 동원해 부당하게 처리한 사실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원의 문항 거래와 평가원의 기망은 수능의 신뢰성 및 공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며 "관련 절차를 신속하게 밟아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우선 사교육 업체와의 문항 거래 등 중대한 비위가 확인된 교사에 대해서는 소관 교육청에 강력한 징계를 요구할 계획이다. 아울러 입시 비리에 가담한 교사에 대한 징계 시효를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시 관련 비위에 대한 양정 기준을 신설하는 '교육공무원 징계양정에 관한 규칙' 개정안도 이달에 입법 예고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또한 지난해 말 '교사의 사교육업체 관련 겸직 허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현직 교사가 입시학원에서 돈을 받고 강의하거나 모의고사 문항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금지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교원 겸직허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사교육업체에서의 강의, 문항 출제, 학원 교재 제작 참여, 컨설팅 등은 영리 목적이나 계속성 여부와 상관없이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는 것을 안내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고의 또는 중과실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해 처분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교육부는 수능과 사설 모의고사 지문 중복 등 수능 출제와 관련해 제기된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수능 출제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올해 6월 수능 모의평가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이달 말 '2025학년도 수능시행 기본계획' 발표 때 보다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교원대 김성천 교수는 "수능 체제 및 대입 전형의 공정성을 해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며 "수능시험의 출제자는 인력풀이 제한돼 있다 보니, 학연과 지연 등이 작동하는 출제 카르텔이 형성될 수밖에 없고, 여러 유혹과 부정이 나타날 개연성이 큰 만큼 더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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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종환 기자 cbs2000@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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