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돈은 없는데”... SK온, 22조 몸값이 투자유치 걸림돌
상반기 적자 전망… 증권가 “올해만 4조원 필요할 듯”
SK그룹의 배터리 기업인 SK온이 잠재적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물밑에서 자금 조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SK온은 적지 않은 자금을 조달해야 하지만, 높은 몸값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기차 업황이 부진한데, 직전보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투자를 유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투자 유치 당시 SK온의 기업가치는 22조원에 달했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지난달 잠재적 투자자들과 투자 유치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온은 공식 투자 유치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증권업계에선 SK온이 조만간 자금 조달에 착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SK온은 올해만 최소 4조원의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추정치가 나온 바 있다.
SK온이 조 단위의 투자금을 유치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차전지 업황이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 침체기) 우려로 전반적으로 후퇴하는 가운데 기업가치는 더 높게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SK온은 전기차 수요 부진 등 영향으로 지난해 5818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실패했고, 올해 상반기도 7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SK온이 투자를 유치할 경우 22조원보다 높은 몸값을 받아내야 한다. 22조원은 지난해 한국투자증권프라이빗에쿼티(한투PE) 컨소시엄과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으로부터 2조30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받을 당시의 기업가치다. 비상장기업들은 기존 재무적투자자(FI)를 고려해 직전보다 높은 기업가치로 투자를 유치한다.
IB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업황은 꺾였는데, 기업가치는 업황이 좋을 때보다 높게 받아내야 하니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향후 상장 주관사 선정 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어 증권사로선 투자 유치 주관사로 선정되길 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SK온은 상장에 앞서 여전히 많은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장 신설과 배터리 제품군 확대 등 수익화를 위한 자금 수요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SK온은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와 배터리 합작법인(JV)을 통해 미국 켄터키·테네시 공장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약 15조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현대차그룹과도 조지아주에 7조8000억원을 들여 35기가와트시(GWh)급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 옌청시에 있는 2공장 증설과 충남 서산 2·3공장 생산라인 개조·증설에도 각각 3조4000억원, 1조70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간다. 또 그간 SK온은 고성능 하이니켈 기반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삼았는데, 작년부터 원통형과 각형 배터리도 개발하고 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SK온의 설비 투자금은 7조5000억원인데, 보유 현금은 3조6000억원으로, 4조원의 외부 자금이 필요하다”며 “투자 유치 이후 SK이노베이션의 SK온 지분율이 기존 90%에서 80%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2차전지 기업 연구원은 “SK온이 돈을 잘 번다면 투자 유치가 필요 없겠지만, 상반기까지도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SK온 입장에선 차입을 선호하겠지만, 금리가 여전히 높은 상황인 만큼 지분 투자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SK온은 지난해 중순 추진한 프리IPO(상장전 지분투자)에 참여한 신규 투자사에 2026년까지 상장을 약속했다. 해당 시점까지 일정 수익률 기준을 충족하는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들은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을 행사할 수 있다. SK온이 상장에 실패하면 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도 SK온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SK온 관계자는 “RFP(제안서)를 발송한 것은 아니고, 투자 의향을 물어본 수준이었다”면서 “이는 상시적인 기업 활동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북미 중심의 생산성 개선에다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증가가 기대되는 상황”이라며 “신규 설비 수율 및 배터리 가격 안정화 등으로 하반기 손익은 개선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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