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건설사도 수익성 악화…‘찬밥’ 된 ‘주택 CEO’[비즈니스 포커스]
일부 CEO 위기론 확산, 재건축·재개발 수주도 ‘출혈 경쟁’ 피해
부동산 경기 악화와 원가 상승으로 건설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회사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데 이어 대형 건설사들까지 영업이익률 하락에 직면하고 있다. 매출이 늘어도 일한 만큼 남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수익성 높았던 주택사업이 역풍을 맞은 영향이 컸다.
이런 상황은 CEO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건설업계를 이끌어온 일명 ‘주택 CEO’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기가 있는 CEO 입장에서 비교적 단기간에 성과를 나타내기 쉬웠던 주택사업이 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재무통인 그룹 내 ‘관리형 리더’가 건설사 CEO로 선임되거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오너가(家)가 경영 일선에 등판하고 있다. 기존 CEO들은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신사업으로 발길을 돌리는 추세다.
10년간 주력이던 주택사업 흐름 변해
대형 건설사는 수십 년간의 트랙 레코드를 바탕으로 중동·아시아 지역의 토목, 플랜트 공사를 주력으로 삼아 실적을 냈다. 그런데 2013년 ‘저유가 쇼크’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중동 현지에서 수주가 어려워진 것은 물론 이미 공사를 마쳐 받아야 할 도급비도 떼이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에 삼성물산 외에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DL이앤씨(옛 대림산업),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 등 1군 건설사들은 중견 건설사들이 전력하던 주택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플랜트나 교량 건설 등에 비해 공사가 쉽고 주택경기 변화 외에 리스크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된 PF대출 역시 이들 건설사는 충분히 감당 가능한 한도 내에서 조달 및 관리가 가능했다. 각 기업은 푸르지오 써밋, 디에이치 같은 하이엔드(high-end) 브랜드를 더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등 서울 핵심지역 재건축·재개발 수주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CEO의 포트폴리오도 점차 달라졌다. 통상 해외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이 사장에 오르던 관행은 사라졌다. 대표적인 인물은 2013년 비(非)건설인 출신으로선 이례적으로 GS건설 사장에 오른 임병용 부회장이다. 임 부회장은 현재의 GS건설 주택사업을 있게 한 주역으로 꼽힌다.
GS건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약 11.9%에 불과하던 주택사업 비중은 임병용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뒤 급격히 늘었다. 2017년에는 주택사업을 포함한 건축부문 매출이 전체 연간 매출의 절반을 넘는 56.9%를 기록했다. 2015년 수주한 서초그랑자이(서초무지개아파트 재건축) 등 다수의 서울 핵심 재건축·재개발 사업 공사도 매출에 반영됐다.
주택 특화 CEO 시대는 주택사업본부장을 거치며 반포1·2·4주구, 한남뉴타운3구역 등 조 단위 주택공사 수주에 성공한 현대건설 윤영준 사장과 사내 홍보실장 출신으로 마케팅·홍보 전문가로 알려진 포스코이앤씨 한성희 사장 선임으로 정점을 찍었다. 윤 사장과 한 사장이 대표이사직을 맡은 2020년은 주택시장이 한창 호황이던 시절이다. 때마침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번지며 건설사들의 국내 주택시장 쏠림 현상은 계속됐다.
열심히 벌어도 안 남아, 전략 바꾸는 건설사
특히 한성희 사장하에 포스코이앤씨는 주택 시공권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수주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22년 7월 하이엔드 브랜드 ‘오티에르’를 론칭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공사를 따내기 위해 현대건설과 경쟁했다.
일각에선 임원 임기가 1년에 불과한 포스코그룹 특성상 포스코이앤씨가 빠르게 실적을 낼 수 있는 주택사업에 더 집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사장 자체의 특기와 주택시장 성장세도 한몫했다. 게다가 2014년 전담부서를 만들며 리모델링 시장에 진출한 포스코이앤씨는 2017년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재건축 사업을 규제하면서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떠오르자 그 수혜를 보게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포스코이앤씨의 기류 변화가 읽힌다. 대우건설과 시공권 경쟁이 예상됐던 개포주공5단지 재건축조합에 입찰참여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해당 조합은 입찰조건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적용은 물론 유럽산 마감재와 3.3㎡(평)당 840만원 공사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이앤씨가 개포주공5단지 재건축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의외”라며 “확실히 변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이앤씨가 최근 새 대표이사 선임과 맞물려 수익성 강화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포스코이앤씨 CEO는 지난 2월 포스코그룹 사장단 인사에 따라 포스코홀딩스 경영전략팀장과 대표를 지낸 전중선 사장으로 교체됐다. 전 사장은 경영전략과 관리에 능한 ‘재무통’으로 불린다.
지난해 포스코이앤씨 실적은 매출이 증가한 가운데 영업이익은 대폭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외형 대비 내실을 기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7조3927억원으로 전년 동기 6조8640억원 대비 7.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67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2868억원보다 41.5%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2.3%에 불과하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개포주공5단지는 내부 사업심의를 통해 사업성을 검토해 불참을 결정했을 뿐 새 CEO 선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이 같은 수익성 악화는 포스코이앤씨만의 일이 아니다. 신용등급 AA부터 BBB등급까지 각 등급군에 속한 건설사의 합산 매출액은 모두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률은 감소했다. 각 건설사별로 보면 신용등급 BBB- 이상 건설사 16개 전체가 매출이 증가했고 이 중 14개 업체의 영업이익률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황이 부진하면서 철근 가격은 떨어지고 있지만 레미콘 가격과 인건비가 여전히 상승하며 원가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사비가 지금처럼 급등하기 전 건설원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수주한 현장의 매출 비중은 여전히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국내 주택건설 현장도 더 이상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준공기한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사 진행과 인력 수급 문제로 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GS건설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사고처리를 위한 비용 문제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GS건설은 허창수 회장 장남인 허윤홍 사장의 승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월 허 회장의 주식 200만 주를 증여받아 GS건설 2대 주주에 오른 허윤홍 사장은 지난해 10월 GS건설 CEO로 선임됐다. 허윤홍 사장은 2013년부터 미래혁신대표를 맡아 모듈러, 수처리 등 고부가가치 신사업 전략을 주도해왔으며 연구개발(R&D) 인력 300명이 상주할 서초구 소재 사옥의 리모델링을 추진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장기적인 안목의 R&D 및 신사업 투자가 강화될 전망이다.
기존 CEO들도 소형모듈원전(SMR)을 비롯한 친환경 신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MR은 이동이 쉽고 설치가 간단하며 모듈 안에 모든 구성기기가 포함돼 방사능 오염물질 유출 위험이 적은 소형(300MW 이하) 원자로를 뜻한다.
일각에서 위기설이 돌았던 현대건설 윤영준 대표와 DL이앤씨 마창민 대표 역시 관리형 리더로서 입지를 지키고 있다. 윤 사장은 주택사업본부에서 유명세를 얻기 전 국내 현장과 재경본부에서 잔뼈가 굵어 비용 관리에 강하다는 평가다. 지난 3월 5일에는 미국 홀텍 인터내셔널(Holtec International), 영국 밸푸어 비티(Balfour Beatty), 모트 맥도널드(Mott MacDonald)와 영국 원자력청 SMR 기술 선정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LG전자 MC사업본부 출신으로 마케팅전략 전문가로 통하던 마창민 대표하의 DL이앤씨는 엄격한 사업관리로 위험 PF대출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몇몇 대형 건설사 ‘CEO 교체설’이 돌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주택사업 비중이 커지기 전에는 주요 건설사 CEO는 모두 해외사업 전문가였다”며 “최근 PF대출 위기가 불거진 몇몇 건설사 대표의 교체설이 돌고 있고, 주택시장 변화로 인해 앞으로 수년간 다시 한번 건설업계가 선호하는 리더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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