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중국산…알리, 'K-고객' 이어 'K-셀러'까지 흡수할까
알리익스프레스 측 "한국어 추가 사실이지만 정식 론칭은 아냐"
알리익스프레스도 '한국어 지원→정식 론칭' 과정 거쳐
최근 이커머스 업계에게는 알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역직구 전문 이커머스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 줄여 말해 ‘알리’가 국내 시장에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는 콘텐츠가 되고 있을 정도다. ‘알리깡’(대량 구매 후 포장 박스를 뜯어보는 콘텐츠), ‘틱톡 화장품 현실 리뷰’(하자가 있는 알리 제품 자체를 즐기는 콘텐츠) 등까지 등장했다. 신드롬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국내 커머스 시장의 게임체인저 쿠팡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는 사람도 있다.
알리의 다음 목표는 ‘K-셀러’다. 최근 알리 비즈니스(B2B 플랫폼)에 한국어를 지원하기 시작하자 한국 진출을 준비하는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용 서비스인 알리익스프레스도 같은 과정을 거쳐 한국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B2C 잡은 알리, B2B까지 노린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알리익스프레스가 자사 도매 사이트인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에서 한국어와 원화 지원을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중소 사업자를 위한 것으로, 200만 개 이상의 물품을 독점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 구매 후 국내에서 판매하려는 사업자가 주 고객이다. 사이트 이용을 원하는 판매자는 홈페이지에 비즈니스 ID 등록을 해야 하며 판매자 인증을 거친 후 알리 측의 접근 승인이 나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알리익스프레스 관계자는 “한국어 지원을 시작한 것은 맞다”면서도 “서비스를 정식 론칭한 것은 아니다. 한국어만 지원할 뿐 한국으로 직배송은 되지 않아 한국 진출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는 제3국에서 물건을 받아 다시 한국으로 들여와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도매 진출을 공식화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어와 원화 지원은 한국 진출을 위한 초기 단계이며 추후 국내 배송도 시작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가 이제 ‘한국어 지원’을 시작하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관심을 받는 것은 그간 알리익스프레스의 행보와 닮았기 때문이다.
알리바바그룹의 사업 특징은 ‘순차적 진출’이다. 소비자용 서비스인 알리익스프레스의 공식적인 국내 진출 시점은 2018년 11월이지만 한국어 지원을 시작한 것은 진출 이전인 2017년이다. 이때부터 국내에서는 ‘알리익스프레스 직구팁’ 등이 퍼지면서 알리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늘기 시작했고 알리익스프레스는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사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한국 전용 고객센터는 이보다 한참 뒤인 2022년 11월에 차렸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에만 1000억원을 투자해 한국 고객을 잡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 역시 알리바바그룹의 전략을 기반으로 사업을 펼친다면 국내 진출은 시간 문제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알리는 소비자용 서비스를 낼 때도 단계별로 서비스를 확대했다”며 “지금도 한국어 지원을 통해 국내 분위기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도 알리바바의 가장 유명한 도매 서비스인 1688닷컴처럼 B2B 서비스”라며 “1688닷컴의 기본적인 틀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수량 제한이 없어 1개부터 구매가 가능하다. 사실상 개인 판매자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기업, 개인 등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도매서비스의 성격을 갖는다는 말이다.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가 1688닷컴과 같은 전략을 쓴다면 국내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히 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떨게 만든 알리…한국인 800만 홀렸다
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알리의 B2B 서비스 출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K-셀러’에 대한 알리익스프레스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2024년부터 한국 셀러를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당 서비스는 ‘1688닷컴’으로 점쳐졌다. 1688닷컴은 알리바바그룹의 B2B 쇼핑 플랫폼이자 알리익스프레스의 계열사다. 판매자 등록을 하면 해당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 계좌를 생성해야 하는 등 절차상의 어려움이 많아 한국 판매자들이 물건을 사려면 에이전트(중간 브로커)를 거쳐야 하는 등 불편함이 있다. 그럼에도 타 사이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 가능해 한국 판매자들도 1688닷컴을 이용하고 있다. 다만 알리익스프레스 측이 “1688닷컴의 한국 진출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하면서 알리의 ‘도매 진출설’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의 변화로 다시 한국 도매시장 진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K-셀러를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은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2월 판매자 수수료 면제 등 파격 조건을 내세웠다. 통상 판매자가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는 10~15% 수준인데 알리는 이 금액을 당분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한국 파트너와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도매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수수료 면제를 선언했으며 추후 내놓을 전략도 가격과 관련한 공격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판매자들이 알리익스프레스에 치중될 경우 이커머스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알리를 따라가기 위해 다들 수수료를 낮추게 된다”며 “문제는 더 수수료를 낮출 수 없다는 점이다. 오픈마켓의 주 수입원이 수수료인데 그걸 뺏는 셈이다. 지금도 흑자를 내는 곳이 몇 없어 싸움이 안 되는 게임이다. 결국 알리가 한국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에서는 알리는 빠르게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사용자는 지난해 1월 336만 명에서 올해 1월 718만 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3월 400만 명을 넘어섰으며 5개월 만인 8월 500만 명을 돌파했다.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알리익스프레스가 500만 명 돌파 이후 600만 명을 확보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단 2달, 700만 명 돌파는 1달 만에 이뤄냈다. 지난 2월에는 800만 명도 넘어서 818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지난해 2월 사용자 355만 명과 비교하면 130% 증가했다. 이 속도라면 연내 1000만 명 돌파도 충분하다.
심지어 연령대도 고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격 부담이 적어 10대 사용자가 주된 고객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최근 알리 고객 가운데 가장 많은 나이대는 40대로 나타났다. 고객 연령대 비중(올해 1월 기준)은 △20대 미만 7.6% △20대 16.9% △30대 18.7% △40대 34.4% △50대 16.9% △60대 이상 5.4% 등이다.
한국 고객이 급증하면서 가품, 하자제품 등 소비자 불만도 늘어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섰다. 공정위는 최근 서울 중구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사무실에 조사관을 보내 소비자 분쟁 대응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공정위는 알리익스프레스가 전자거래법상 규정된 소비자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제품들은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저렴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팔 수가 없다”며 “그럼 결국 셀러들이 어떤 곳을 선택하겠나. 모두가 중국 앱으로 몰리게 된다. 생태계 파괴는 시간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알리익스프레스가 B2C 시장을 잡아먹듯 B2B 시장에서도 셀러를 확보한다면 결국 국내 오픈마켓 시장에서 어떤 업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알리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게 아니라 알리만 살아남는 구조가 된다”고 덧붙였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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