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겨칠 줄 몰라?" 핀잔 듣자마자 우월홈런, 결국 이정후의 '우상'이 됐다...실물 영접후 "행복했다"

노재형 2024. 3.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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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는 KBO 시절부터 51번을 달았다. 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
이치로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10년 연속 3할-200안타에 골드글러브를 차지했다. A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이정후는 KBO 시절에도 51번을 달았다. 어린 때 '우상'인 스즈키 이치로의 번호다. 지난해 12월 16일(이하 한국시각)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1300만달러에 계약한 뒤 입단식에서도 51번이 적힌 유니폼을 건네받았다.

이정후가 마침내 이치로를 '실물'로 영접했다. 11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시범경기가 열린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의 피오리아스타디움에서다. 경기 전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멜빈 감독은 2003~2004년, 두 시즌 시애틀 지휘봉을 잡은 경력이 있다. 당시 멜빈 감독은 초보 사령탑이었고, 이치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둘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멜빈 감독은 이날 경기 전 "(주선한 뒤)둘이 얘기를 하는 걸 봤다. 멋있더라. 이정후가 그 전에 질문을 준비했는데, 막상 그 앞에 서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기 준비와 51번에 대한 자부심 등 더 많은 걸 얘기했다고 한다. 정말 좋았다. 이치로도 이정후에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는 배번 51, 좌타자 변신, 외야수, 컨택트 히팅 등 많은 부분을 이치로와 닮았다. 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
메이저리그 통산 3089안타를 때린 이치로 스즈키는 컨택트 히터의 대가였다. AP연합뉴스

이정후는 현지 매체들과 만나 "조금 설��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치로에게 경기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메이저리그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많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짧았지만 그와 얘기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밝혔다.

이치로는 현재 시애틀 구단 특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MLB.com은 '이정후는 이치로가 상대 더그아웃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경기 내내 신경을 쓰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는 1회 매리너스 우완 조지 커비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당했는데, 이번 시범경기 19타수에서 당한 두 번째 삼진이었다. 2회에는 라인드라이브 아웃으로 물러났고, 4회 마지막 타석에서 중전안타를 터뜨렸다'고 전했다.

멜빈 감독은 경기 후 "이정후는 게임이 흐를수록 안정을 찾았다. 초반에는 좀 긴장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능력만큼 플레이하고 성공한 선수이기 때문에 긴장은 몸과 상관없는 순간과 같은 것이다. 멋있는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MLB.com은 '이정후는 어린 시절 이치로의 플레이에 매료됐다. 이치로가 2004년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깼을 때가 가장 기억이 난다고 했다'면서 '그는 커리어를 쌓는 동안 이치로를 닮으려고 했다. 이치로처럼 좌타석에서 치고 뛰어난 컨택트 기술을 연마했다'고 했다.

이정후. AP연합뉴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 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

멜빈 감독은 "이정후와 이치로는 무척 닮았다. 이정후도 51번을 달았고, 리드오프를 치며, 외야수로 뛴다. 아마 이치로를 가장 많이 본 선수가 아닐까 싶다. (이치로는)그가 바라는 스타일의 선수"라고 했다.

이어 멜빈 감독은 이정후의 타격에 대해 "배팅 연습을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파워가 있다. 이치로처럼 뒷발에 중심을 두고 공을 때린다. 며칠 전 109마일 타구를 우측으로 날려보냈다. 분명히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파워배팅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면 이치로는 23년 전 시애틀 스프링트레이닝에 처음 참가했을 때 어땠을까. 지금의 이정후와 비교하면 상당한 '의심'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이치로는 2000년 말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첫 일본인 선수다. 시애틀 구단은 1312만5000달러의 입찰액을 적어내 단독 교섭권을 얻었고, 3년 1400만달러에 이치로와 계약했다.

아시아 출신 야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개척길에 오른 이치로는 2001년 2월 스프링트레이닝에 참가할 때부터 온갖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한 체구에 타석에서 힘을 영 쓰지 못할 것 같은 폼으로 방망이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당시 루 피넬라 시애틀 감독조차도 이치로의 시범경기 타격을 보고는 혀를 찼다.

시애틀타임스의 2011년 7월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피넬라 감독은 당시 시범경기에서 이치로가 치는 걸 보고 당황했다. 공을 좌측으로 밀어서 연신 땅볼을 쳤기 때문이다. 피넬라 감독이 "공을 잡아당겨 친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이치로는 "가끔"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가 끌어당겨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날렸다. 이치로는 홈을 밟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서 피넬라 감독에 "이제 만족하시냐"고 했다고 한다. 그 뒤로 피넬라 감독은 "이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더 이상 타격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치로가 당시 밀어치기와 파울 쳐내기에 집중한 건 시범경기에서 가능한 많은 공을 보면서 메이저리그 투수에 적응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2004년 한 시즌 최다인 262안타를 터뜨렸다. AP연합뉴스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의 이치로 스즈키와 루 피넬라 감독. AP연합뉴스

이치로는 2001년 4월 3일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역사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1번 우익수로 출전해 5타수 2안타 1득점을 올렸다. 4월 7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는 6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을 때리며 팬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는 4월 5일 오클랜드전서 타율 0.308을 기록한 이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이 3할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MVP와 신인왕 석권은 전설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2010년까지 10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며 타율 3할-200안타-골드글러브 행진을 이어간 이치로는 뉴욕 양키스, 마이애미 말린스를 거쳐 2018년 시애틀로 돌아와 그해 통산 3089안타를 때리고 유니폼을 벗었다.

이치로는 이듬해 3월 도쿄돔에서 열린 오클랜드와의 개막 2연전에 출전해 은퇴경기를 가진 뒤 공식 은퇴했기 때문에 내년에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이 생긴다. 전문가들은 그가 마리아노 리베라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만장일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치로는 노모 히데오와 오타니 쇼헤이 중간 시대에 메이저리그에 아시아 야구의 강인함을 심은 주역이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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