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명 떠난 자리에 150여명 배치…"효과 의문"
응급·중환자 등은 도움
"진료과 배정 중요" 의견
비수도권서 공보의 차출, 지역의료공백 심화 우려
"전공의 1만명이 떠난 자리에 군의관과 공보의(공중보건의) 150여명 정도를 배치한다고 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요."
정부가 전공의와 공보의 158명을 배치하기 시작한 11일 익명을 요구한 국립병원 교수 A씨는 "우리 병원의 경우 근무지를 떠난 전공의가 세 자릿수, 병원에서 최소한으로 필요하다고 요청한 인력은 두 자릿수"라며 이렇게 말했다.
A 교수는 "그 숫자의 절반도 안 되는 한 자릿수 정도의 파견 의료진이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고 들었다"며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전공의와 일반의가 섞여 있어서 상황에 따라 배치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국립의료원 등 20개 병원에 파견된 인력은 군의관 20명, 공보의 138명이다. 공보의 138명 중 92명은 일반의, 46명은 전공의다.
이날 오후부터 파견된 추가 인력들은 당장 근무를 시작하긴 어렵다. 복지부도 파견된 인력들은 이틀간 교육 기간을 갖고 13일부터 정식 근무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의료진들도 전공의가 1만명 이상 떠난 자리에 100여명 배치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2912명 중 계약 포기 또는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1만1994명으로 92.9% 수준이다. 이번에 복지부가 배치한 인력은 이의 1.3% 수준이다.
파견 인원수뿐만 아니라 진료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도 낮았다. 대학병원 교수 B씨는 "상급병원 환자들은 '명의'를 찾아서 해당 병원을 찾아오는데 어떤 환자가 군의관, 공보의를 원하겠느냐"며 "인력이 부족해진 병실 회진 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고 토로했다.
다른 대학병원 교수 C씨는 "파견된 기간도 너무 짧다"며 "병원마다 진료 시스템이나 환경이 다른데 전혀 적응되지 않은 상태로 와서 적응할 때쯤 다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숫자와 관계없이 배정되는 진료과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전공의가 빠진 공백을 채우는 것엔 부족하겠지만 군의관, 공보의가 어디에 배치되느냐가 숫자보다 중요할 것"이라며 "응급실, 중환자실을 비롯해 수술 진행을 도울 수 있는 마취과 등에 배정하면 적은 수여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봤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기간이 길면 긴 대로 기존 근무지의 의료 공백 문제가 있다"며 "효율성 문제를 생각해, 한 달이라는 기간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또 추가 인력 파견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박 차관은 "200명 정도 추가로 파견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파견한 공보의와 군의관 상당수는 지방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으로 파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보의의 경우 138명 중 38.4%인 53명이 비수도권 근무지에서 수도권으로 차출돼 역설적으로 지역의료 공백이 심화할 우려가 커졌다. 정부는 지역 순환 근무 등을 통해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투입된 공보의 중 절반이 '빅5'를 포함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공보의 138명 중 53명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근무지가 변경됐다. 파견 전 비수도권에 근무하던 인원은 전체의 88.4%인 122명이었는데 파견 후에는 50%인 69명으로 감소하게 됐다. 수도권 근무자는 11.6%인 16명에서 69명(50%)으로 늘었다.
공보의 138명 중 전문의는 46명, 일반의는 92명인데 지방에서 필수의료인력으로 근무하던 인력들이 서울 등 수도권의 병원으로 빠져나갔다. 구체적으로 경상북도청에서 근무하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의성군보건소에 근무하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서울아산병원으로 각각 파견됐다.
이에 일부 지역은 진료 업무가 중단되기도 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충남 계룡시 보건소는 공보의 파견 등으로 일반 진료, 예방접종, 보건증 발급 업무가 모두 중단될 예정이다. 가평 보건지소 5곳은 모두 폐쇄 상태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은 "공보의 50%가 수도권으로 가게 됐고, 의료취약지역에 있던 공보의들도 광주나 지역 거점도시로 이동하게 돼 지역의료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보건의료원은 지역에서 최종 종착지 역할을 하는 곳이 많은데 전문의가 많다는 이유로 거기서 차출된 인원도 적지 않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은 대부분 만성질환자들이 많은데 그렇다 보니 정부가 급한대로 무리해서라도 의료인력을 재배치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공의들이 빨리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긴급한 수요가 있는 지역 또는 기관에서의 차출은 가급적이면 배제하는 쪽으로 하고 있다"며 "일부 진료에 불편을 겪으실 수는 있지만 지역 순환 근무나 여러 가지를 통해 (지역의료 공백을) 메꿔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단비 기자 kdb@mt.co.kr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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