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20번' 재투자했어도 책임無?···배상기준 보니
투자 '21번 이상'부터 배상 비율 차감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 희석 논란도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 사태와 관련해 판매사에 ‘최대 100% 배상’을 권고하는 분쟁 조정 기준을 내놨다. 라임펀드’나 ‘옵티머스펀드’와 같은 사기 상품 판매 사례를 제외하면 금감원이 손실 ‘전액 배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례로 예적금을 목적으로 은행을 찾았던 80세 이상의 노인이 ELS에 처음 가입한 경우 손실액 모두를 보전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정안이 투자자 책임을 은행에 오롯이 떠넘긴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손실을 입은 투자자 상당수가 ELS에 수차례 재가입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설명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판매사에 배상액을 일괄 청구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국 지침대로라면 이미 20회나 ELS에 가입한 경험이 있더라도 ELS 상품에 익숙하지 않은 투자자로 분류돼 일종의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이 11일 발표한 ‘홍콩H지수 ELS 검사 결과(잠정) 및 분쟁 조정 기준안’에 따르면 손실 배상 비율 범위는 0~100%다. 기본 배상 비율을 20~40%로 설정했으에 투자 사례별로 최대 45%포인트까지 배상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려고 판매사를 방문했거나 고령자·은퇴자·주부인 경우, ELS 첫 투자자인 경우 배상 비율이 높아진다.
배상 비율은 경우에 따라 차감될 수도 있다. ELS 투자 경험이 21회 이상이거나 과거 투자로 이번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경우 15%포인트, 투자 금액이 5000만 원 이상일 경우 10%포인트 차감한다. 이를 종합할 때 다수 사례가 배상 비율 20~60% 범위 내에서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개별 사실에 따라 (배상 비율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다수 사례가 20~60% 범위에 분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배상안이 투자자의 자기 책임 원칙을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지적받는 부분은 과거 ELS에 가입했던 상당수 투자자에게도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한 점이다. 당국은 재투자자의 경우 배상 비율을 차감하겠다면서도 그 기준점을 ‘투자 경험 21회’로 잡았다. 20회나 ELS에 가입하면서 ‘녹인 구간’(knock-in·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수준)에 진입해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경험했던 투자자라도 일종의 ‘면죄부’를 받게 된 셈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홍콩H지수 ELS의 경우 재투자자가 대부분”이라면서 “판매사의 설명을 못 들었다며 불완전판매로 규정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
당국이 그간 ‘이자 장사’ 압박을 통해 은행에 비이자이익을 늘릴 것을 주문해왔음에도 오롯이 은행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교수는 “은행이 잘못한 부분을 짚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투자자 책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은행에 비이자이익을 늘리라고 하면서 사고가 날 때마다 배상을 해주면 금융 산업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책은행의 은행장을 지낸 한 인사도 “분쟁 조정안의 토대가 되는 검사에만 수개월이 걸리는데 검사에 돌입한 지 두 달여 만에 조정안을 내놓은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손실을 만회해주는 일이 반복되면 투자자의 당국 의존 성향은 짙어질 수밖에 없고 금융사는 탈이 안 나는 예적금 상품에만 발목 잡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국은 한발 더 나아가 주요 판매사를 제재하고 ELS 등 고위험 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안까지 검토하기로 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구체적인 제재 범위와 수준은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추후 결정될 것”이라면서 “과징금 부과 여부 및 수준 결정 시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을 보이면 제재 양정 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이 금융사의 위법행위를 재단한 근거가 부적절하다는 비판 역시 나온다. 당국이 은행의 불완전판매 행위를 문제 삼으면서 꺼낸 금융소비자보호법은 2021년 3월 도입됐다. 금소법은 금융 상품 판매사가 소비자 투자 성향 등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하는 내용의 적합성 원칙을 담고 있다. 문제는 금융사가 적합성 원칙을 지키지 않았더라도 금소법 시행 이전에 가입했다면 위법으로 몰아붙일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위법행위로 규정하지 못하면 배상 수준 역시 상대적으로 낮아야 하는데 당국이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ELS 만기가 통상 3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2021년 1~2월 가입자들에 대한 배상액은 3월 이후 가입자보다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논의에 관여한 한 인사는 “금융사의 판매 행태가 적법한지를 따지려면 판매 당시 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같은 행위를 했더라도 어느 시점에 이뤄졌는지에 따라 위법 여부가 갈릴 수 있다”고 전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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