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신드롬'에 갇힌 이재명... 野, 중도 표심 잃는 '제로섬' 게임
4050·수도권, 호남·정치고관여층서 지지세
반윤 전초기지, 종북 비례연합 보이콧까지
"이재명 경고" 차원에서 민주 지지층 이탈
野 표 나눠먹는 제로섬? 외연 확장 한계
친명 지지자들 '몰빵론' 외치며 자강론
총선 이후 친명-친문 野 경쟁 관계 전망도
"민주당 공천에 너무 화가 나서 이번에는 투표장에 안 나가려 했는데, 조국당 비례 찍으러 갈 겁니다. 저라고 조국 전 장관에게 실망한 마음이야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대표가 더 마음에 안 듭니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 A씨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모임) 출신 민주당 골수 지지자인 40대 후반 남성 A(수도권 거주)씨는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을 찍을 참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조국 사태' 당시 맹목적으로 옹호한 '서초동 집회파'가 아닌데도 조국혁신당에 마음을 열었다. A씨는 11일 "나라가 후퇴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정신 못 차리고 대체 누구랑 싸우고 있느냐"고 질타했다.
조국혁신당이 창당 일주일 만에 총선 정국을 뒤흔드는 핵으로 부상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비례정당 지지율이 15%를 웃돌아 최대 12석까지 확보할 수 있다. 조국 대표도 이날 비례대표 출마를 공식화했다. 거대 양당에 이어 제3당이 가능한 수치다. '조국 신드롬'이나 다름없다. 조 대표의 잇단 유죄판결에 "면죄부 정당이냐"고 혹독한 비난이 쏟아질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쌍끌이 심판론'이 "그로테스크한, 비정상의 정치 현상을 만들어냈다"(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신율 명지대 교수)고 분석한다. 윤석열 정권의 일방통행과 민주당의 권력다툼에 모두 분노하는 민심의 틈을 영리하게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팬덤정치를 넘어 야권 진보개혁 진영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4050·수도권·호남, 민주당 분화?... "전향파들의 반란"
조국혁신당의 지지층은 뚜렷하다. △진보 성향 △4050세대 △수도권·호남 지역기반을 둔 △정치 고관여층들이 20% 안팎의 견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보통 신당의 지지율 확보는 무당파를 흡수하는 '동원' 표심과 기존 정당 지지자들이 옮겨오는 '전향' 표심이 있는데, 조국혁신당의 경우 현재까지는 친문, 호남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핵심 강성 지지층들의 이탈이 크다"며 "민주당 지지층이 쪼개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지지층의 분화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향한 경고"(이관후 건국대 교수) 의미다. "이재명을 간판으로 총선을 넘어 대선까지 이길 수 있느냐"는 근본적 의문이 지지층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비명횡사' 공천 파동이 결정타였다. 민주당이 내홍으로 표류하는 사이, 윤석열 정권 심판론은 무뎌지고 공허해졌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창당 모토부터 '타도 윤석열'을 분명히 했다. 검찰독재정권 종식과 김건희 특검법 추진 등 제시하는 목표에 거침이 없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조국혁신당이 반윤석열 진영의 전초기지로서 심판론의 선명성을 부각시켰다. 사이다에 목말랐던 민주당 지지층을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윤 선봉에 종북 '보이콧'까지... "이재명에 전략적 경고"
종북 논란에 발목 잡힌 민주당 비례연합에 대한 보이콧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의 일부 당선권 의석을 진보당과 새진보연합, 시민사회 세력에 배정하는데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 후신들에게 여의도 입성의 길을 터줬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통진당 계열에 대한 이념적 거부감에 더해, 굳이 우리(민주당) 표를 줘서 왜 남 좋은 일 시키느냐는 반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비례투표를 잔뜩해봤자 4명 중 1명만 민주당 몫으로 작동하니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불만"이라는 해석이다.
'조국 대망론'의 영향도 있다. 2016년 총선 당시 안철수 신당에 차기 대선주자 안철수의 미래가치가 반영돼 호남을 뒷배로 돌풍을 일으킨 것과 비견된다. 조국혁신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왜 조국에게만 십자가를 지우느냐"는 '핍박' 서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박 평론가는 "조국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윤석열은 이재명은 떳떳하냐, 해도 너무하다는 동정론이 있다"고 분석했다.
"野 표 나눠먹는 제로섬 게임"... 스텝 꼬인 민주당 '중도 실기'
다만 조국혁신당 지지층이 아직은 야권에 머물러 확장성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박성민 대표는 "민주당 지지층이 서로 표를 나눠먹는 제로섬 게임"이라며 조국혁신당 지지율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낮게 봤다. "창당 컨벤션 효과"(신율 교수), "민주당의 반사이익"(이관후 교수)에 따른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도리어 중도층의 반감을 키운다는 점에서 야권 총선 판세에 악재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한울 원장은 "총선은 결국 여야 집토끼를 넘어 중도무당층의 표심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에 달려 있는데, 조국의 등장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진보진영의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며 "디올백이 아니라 내로남불을 재소환해 역심판론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공정 이슈에 민감한 20대에서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0%(한국갤럽 3월 1주 여론조사)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온 것도 향후 역풍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정 원장은 "민주당이 총선 전략으로 중도 클릭을 했다면 왼쪽 블록에 있는 조국혁신당과의 역할분담이 가능했겠지만, 통진당 후신과 손잡고 공천에서 중도 성향 의원들을 잘라내면서 스텝이 제대로 꼬였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이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43.1%로 지지율이 2주 만에 반등(국민의힘은 41.9%)한 것에 비춰 조국혁신당과 야권 연대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몰빵론' 꺼낸 친명, 합당 선 그은 '친문' 조국, 야권 재편 신호탄 되나
민주당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총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맏형으로서 '느스한 심판론 연대'를 주도하며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기류가 바뀌었다. 친이재명(친명)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른바 '지민비조' 구호에 동조하는 대신 "지역구도, 비례도 민주당"이라는 이른바 '몰빵론'을 외치며 자강론에 힘을 싣고 있다.
조국 대표도 원내 진입 이후 민주당의 2중대가 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 대표는 "진보적 개혁 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과 합당하지 않겠다"며 선을 긋고 있다. 민주당보다 더 강경한 진보 개혁 어젠다로 독자노선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조국혁신당이 '문재인 정부 시즌2'를 표방한 만큼, 향후 야권 내 '친문당'과 '친명당'의 경쟁관계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관후 교수는 "민주당 지지층 입장에선 민주당을 견인하고, 견제하고, 민주당과 경쟁하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조국혁신당도 민주당의 반사이익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1115390000224)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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