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다"는 87세 고객에 "이해했다 하세요" 반복한 은행원

안하늘 2024. 3. 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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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로 드러난 ELS 불완전판매
5개 은행, 6개 증권사 현장검사 결과
손실기간 빼고 "10년 원금손실 없던 상품" 강조
은행 최대 50%, 투자자별 45%P 가감 배상
"0~100%까지 케이스별로 다양한 배상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손실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선 H지수 관련 ELS 판매 과정에서 각종 불완전판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 정도와 투자자의 가입 유형 등에 따라 판매사가 20~40%의 기본책임을 지고, 투자자별로 45%포인트를 더하거나 빼는 내용의 분쟁조정기준을 마련했다.

금융감독원은 11일 ELS 검사 결과와 함께 배상비율을 정할 수 있는 분쟁조정기준을 발표했다. 대규모 손실이 예고되자 금감원은 1월부터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신한 등 6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실시했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내부 리스크 기준 완화하고 판매 독려

금감원에 따르면, 판매사들은 고객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는 기간에도 과도한 영업목표를 내걸며 전사적 판매를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판매 한도 관리, 비예금상품위원회 운영 등에는 소홀해 소비자 보호는 외면됐다.

실제 판매 정책과 소비자 보호 관리 실태가 전반적으로 부실했다. A은행은 주가지수 변동성 확대 시 판매한도를 감축하도록 한 내부 리스크 관리기준을 완화해 판매한도를 확대(분기별 목표의 50% → 80%)했다. 이 판매 한도마저 초과하자 예외 한도(2조5,000억 원)를 설정하고 판매를 지속했다.

고객 투자성향 분석 시 거래 목적, 위험에 대한 태도, 연령 등 6개 항목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함에도 일부 항목을 누락하거나 점수가 배정되지 않도록 하는 등 부실 운영도 드러났다. B증권은 '원금 보존'을 희망하는 투자자에게도 자산 규모, 소득 수준 등 다른 항목 평가 결과에 의해 ELS 가입이 가능하도록 조작했다.

투자성 상품 판매 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 위험 시나리오, 위험 등급 유의사항 등 투자 위험을 누락하거나 왜곡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C은행은 증권신고서에 적힌 손실위험 분석 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임의로 변경했다. 2007~2008년 금융위기 당시 손실을 제외한 것으로, 해당 상품은 '과거 10년간 손실이 전무한' 안전 상품으로 둔갑돼 판매됐다.

대리 가입, 서류 변조 등 심각한 불완전판매도 버젓이 이뤄졌다. D은행 판매직원은 87세 고령 가입자가 청력이 약해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는 취지로 말했음에도 '이해했다'고 답할 것을 반복해 요청한 뒤 가입시켰다.


가입 유형·사례별로 0~100% 배상

H지수 관련 ELS 투자자들이 1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삭발 투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금감원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배상비율을 정할 수 있는 분쟁조정기준을 제시했다. 배상비율은 판매자별 요인(23~50%)에 투자자별 요인(±45%포인트)을 반영한 뒤 기타 조정요인(±10%포인트)을 접목해 결정된다.

판매자별 요인에서는 판매사의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 위반 여부에 따라 기본 배상비율을 20~40%로 정했다. 여기에 불완전판매를 확대한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고려해 은행은 10%포인트, 증권사는 5%포인트를 가중한다.

투자자별 요인에서는 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 보호 소홀, 자료 관리 부실 등 각 투자자에 대한 판매사의 절차상 미흡사항을 고려해 판매사 책임가중 사유를 배상비율에 가산(최대 +45%포인트)한다. 반면 ELS 투자 경험(가입 횟수, 금액 등), 금융 지식수준 등 투자자 책임에 따른 과실 사유를 차감(최대 -45%포인트)한다. 일반화하기 곤란한 내용이 있는 경우 기타 조정요인으로 반영한다.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정도, 투자자의 과거 투자 경험 등에 따라 0~100%까지 다양한 배상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등 금융상품 제조·판매에 관한 법적 규제와 절차 등이 크게 강화됐지만 이번 검사를 통해 이러한 원칙과 취지에 맞지 않는 부분이 다수 확인됐다"며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위와 함께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ELS 판매잔액은 39만6,000계좌에 18조8,000억 원에 달한다. 올해 2월까지 ELS 만기 도래액 2조2,000억 원 중 손실금액만도 1조2,000억 원이다. 현재 지수(5,678포인트)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추가 예상 손실금액은 4조6,000억 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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