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미국 금융당국은 스팩 상장에 칼을 대려고 할까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 전기차 회사 일렉트릭 라스트 마일 솔루션즈가 파산 신청(챕터7)을 했다. '스팩(SPAC, 기업인수목적회사)'을 통해 우회 상장한 후 불과 1년 만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팩을 통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이 파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에만 글로벌 공유오피스 1위 업체인 위워크, 공유스쿠터 1위 버드글로벌, 미국 전기버스 1위 프로테라, 수경재배 스타트업 앱하비스트 등 21개 스팩 상장 기업이 파산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2년 말 나스닥 상장 1호 K-바이오 기업이라는 타이틀로 화려하게 스팩 상장한 피크바이오가 4개월 만에 상장 폐지되기도 했다.
또한 비록 파산은 하지 않았지만 스팩으로 우회 상장한 많은 기업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수소전지 트럭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니콜라의 주가는 99%나 하락했으며, 창업자인 트레버 밀턴은 투자자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전기차 업체 루시드도 92% 하락하였고, 중고차 판매 플랫폼 카주는 97% 이상 떨어졌다. 2021년 이후 스팩 상장한 기업 401개 중 주가가 오른 스팩은 단 27개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팩으로 거액을 챙긴 내부자들의 모럴 해저드도 도마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스팩 상장 460여 업체의 주식 매도 공시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내부자들이 상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한 차익을 거두고 주식을 내다 판 것으로 확인됐으며, 그로 인해 주가는 폭락하고 개미투자자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대표적인 예로, 버진애틀랜틱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은 우주여행 업체 버진갤럭틱을 만들어 스팩 상장하고 우주선 발사가 지연돼 주가가 사상 최고치에 비해 90% 넘게 폭락하기 직전에 지분 대부분을 매각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물론 모든 손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의 몫이었다.
스팩은 금융회사가 M&A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특별 상장되는 페이퍼 컴퍼니다. 실체가 없는 회사로 목표는 오로지 기업 인수다. M&A 자금을 모으면 스팩은 주식시장에 상장되고, 일정 기간 내에 기업 인수를 성사시켜 주가가 상승하면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각하여 수익을 올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을 보게 된다. 상장을 원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신규상장에서 필요한 복잡한 절차 없이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주식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스팩은 1993년 미국에서 탄생했으며, 우리나라에는 2009년에 도입됐다.
일반적으로 재무 상태가 매우 건전하고 꾸준한 성장이 예상되거나, 지금은 비록 적자라도 앞으로 큰 성장이 기대되는 비상장 기업은 스팩을 활용한 우회상장보다 신규상장을 선호한다. 원하는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고 상장 절차를 통해 회사의 인지도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무 상태, 성장 가능성, 기타 기업 경영의 요소에서 분명 매력이 있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 리스크 내지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회사가 스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리서치업체 허드슨랩에 따르면 2022년 연차보고서를 제출한 미국 상장사 중 스팩 상장 업체의 약 44%가 '계속기업 불확실성' 진단을 받았다. 계속기업 불확실성 진단이란 유동자금이 없거나 자본 잠식이 발생해 향후 상장폐지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편 블룸버그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스팩 상장 기업들이 형편없는 실적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자금조달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일반적인 IPO보다 비교적 검증 정도가 덜한 스팩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이전 20년보다 훨씬 더 많은 860개의 스팩이 만들어졌으며, 328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끌어모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문제는 당초 투자자들에게 홍보한 것처럼 성공적인 합병 결과를 도출한 스팩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합병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퍼뜨리면서 주가를 올리지만, 실제로는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따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금년 초 소액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IPO 수준으로 스팩 합병의 정보공개 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
사실 스팩 합병의 경우, 비교적 느슨한 검증 절차로 인해 기업들이 미래 영업실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반영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기업가치가 고평가되면 결국 투자자 피해로 귀결된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기업이 우회로를 이용해 상장한다고 해서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가 허술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년 6월 새로운 규정이 발효되면 미국에서 스팩의 인기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금감원이 지난 2010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스팩으로 상장한 기업 139곳을 대상으로 상장 당시 실적 추정치와 실제 실적을 분석한 결과, 10개 회사 중 8개가 미래 영업실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약속한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팩 상장 후 5년이 경과한 기업 48곳 중 영업이익이 추정치를 달성한 기업은 4곳에 불과했으며,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이 예상된다고 했지만 매출이 전무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2021년 한국거래소는 주가 상승률이 과도했던 스팩 17종목에 대한 기획감시 결과 7개 종목에서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혐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아직 아무런 합병 계획도 발표되지 않은 단순한 서류상의 회사인 스팩의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치면서 올라가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2020~2021년 한국과 미국의 스팩 열풍이 그 좋은 예이다. 금년에도 여전히 코스닥 시장에서는 신규 스팩의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유난히 큰 변동성을 나타낸다.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스팩을 만든 증권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자자 보호 노력을 소홀히 한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작년 말 스팩 상장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공시서식 작성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스팩 상장 기업의 영업실적 예측치와 실적치 간 차이와 발생 사유, 가치 평가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근거가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회사와 어떤 조건으로 M&A를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뀌기 때문에 백지수표 회사(blank-check corporations)로도 불리는 스팩은 과연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모델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국면과 마주하고 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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