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사는 학원서 거액 받고 제자들은 학원으로, 사교육 요지경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에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거액을 받았다는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수능 출제 또는 EBS 수능 연계 교재 집필에 참여한 다수 교사가 거액을 받고 사교육 업체와 문항을 거래한 사실이 밝혀졌다. 혐의가 드러나 수사 의뢰된 교사와 학원 관계자가 지난해 9월 교육부 발표 때보다 30여 명 늘어난 56명이다.
감사원이 발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수능과 모의평가의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고교 교사는 같이 합숙한 교사 8명을 모아 문항 공급 조직까지 만들었다. A씨는 2019~2023년 이들 교사들과 모의고사 문항 2000여 개를 만들어 유명 학원강사 등에게 주고 6억6000만원을 받았다. 상당수 교사들은 사설 업체에 문제를 판 이력을 숨기고 수능·모의평가 출제 위원으로 참여했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문항이 대형 입시학원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지문이나 EBS 수능 교재 감수본과 같았던 배경에도 이런 ‘사교육 카르텔’이 있었던 셈이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수능과 비슷한 문제를 만드는 학원일수록 수험생이 몰려 큰돈을 번다. 이 카르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직 교사들이 거액을 챙기는 가운데 제자들은 사교육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일부 교사들은 학원에 판 문제를 그대로 학교 중간·기말고사 문제로도 출제했다. 고교 내신은 대입 합격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입시 평가 자료다. 교사들이 학원 다닌 학생들이 좋은 내신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으로 범죄와 다름없다. 이들 교사들이 사교육 시장에서 돈을 버는 열성 이상으로 자기 학생들을 가르쳤을 리 없다. 드러난 사례가 빙산의 일각은 아닌지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례는 우리나라 대학 입시 제도의 기본 원칙인 공정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수능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수능 출제·감독 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문제 검증을 부실하게 한 데다 영어 문항 등에서 유착 가능성이 명백한데도 “우연” 운운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가려 했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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