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립이라 해도, 중·러 눈엔 서방일 뿐”
스웨덴이 11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서 공식 가입 행사를 치렀다. 스웨덴과 함께 가입을 신청한 핀란드가 지난해 4월 먼저 나토의 일원이 된 지 11개월 만이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1814년 이후 계속된 210년간의 ‘중립 노선’을 깬 것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선 중립 노선을 펼쳐온 이 북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를 더욱 자극해 서방과의 대결 국면을 더 고조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브뤼셀에서 만난 얀 요엘 안데르손(53) 유럽안보연구소(EUISS) 선임 연구위원은 그러나 “러시아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중립으로 본 적이 없다”며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 이후 계속 미뤄져 왔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는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과도 매우 유사하다”고도 했다. 그는 스웨덴은 물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안보 전문가다. 현재 EU의 외교·안보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하는 EUISS에서 몸 담으며 포린어페어스 등 외교 안보 전문지의 필자로도 활약 중이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필연이었나.
“(안보 전략의 영역에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러시아는 항상 스웨덴과 핀란드를 미국과 서방 세력의 일원으로 생각해왔다. (러시아와 육·해상 경계를 마주한) 이 두 나라는 ‘중립’을 표방했고 서방과 러시아 간 ‘완충 지역’ 취급을 받았지만, 러시아는 (두 나라를) 결코 중립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끊임없이 (두 나라) 영공을 침범하고, 군사 훈련을 했다.”
러시아가 스웨덴과 핀란드를 ‘공격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한 양국은 안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고, 결국 나토 가입에 나서야 했다는 의미다.
-스웨덴과 한국의 유사점은?
“스웨덴도 한국처럼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정파 간 갈등이 있었고, 결국 국민 통합 차원에서 중립을 내세워왔다. 한국이 미국·서방 동맹과 중국·북한 사이에서 계속 국내 정치적 갈등을 겪고, 중간자적 입장을 유지하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러시아의 눈에 스웨덴이 서방의 일부란 사실은 항상 분명했듯, 중·러도 한국을 명백한 미국과 서방세계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시각에 한국은 수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다.”
안데르손은 “(강대국 사이에 낀) 어떤 나라가 중간 지점에서 플레이(play·전략적 행보)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고 했다. 국가 간 ‘인식의 격차’로 인한 잘못된 예측이나 판단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두 나라 나토 가입의 국제 정치적 의미는.
“(힘이 우선하는) 현실주의 국제 정치(Realpolitik)의 귀환을 방증한다. 핀란드는 항상 ‘러시아의 이익을 존중하면 러시아도 핀란드를 존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더 이상 나토의 확장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최후통첩하는 순간 산산이 깨졌다. 핀란드의 이런 변화는 스웨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핀란드는 냉전 시기 러시아에 극도로 유화적인 외교 정책을 펼쳐 ‘핀란드화(finlandisation)’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는 대화로 문제 해결이 가능한 나라’라는 핀란드의 믿음하에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안데르손은 “러시아가 ‘같은 뿌리’라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학살을 벌이는 것을 보며 핀란드는 ‘러시아가 우리가 알던 그런 나라가 아니다’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러시아는 이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그 동맹들의 도발 가능성은.
“북유럽부터 아시아의 동쪽 끝까지 세계의 안보가 밀접하게 연계돼 있으며, 우리 모두가 다시 ‘위험한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유럽 등 나토 회원국들과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전략적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시도를 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러시아는 현재 유럽(우크라이나) 문제에 여념이 없다. 중국 혹은 북한이 대신해 (러시아에 이익이 되는) 도발에 나설 수 있다.”
-나토와 한국이 서로 ‘파트너’ 관계를 맺으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유럽 국가들이 ‘당장’ 무기가 필요해졌다. 무기를 많이, 또 빨리 생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상황이다. 한국은 (냉전 후에도) 무기를 지속적으로 대량 생산해 온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더구나 산이 많고 겨울이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나라다. 한국 무기는 그런 환경에 맞춰 만들어져 유럽에서 각광받을 수 있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한국이 (나토 회원국에) 대량의 무기를 만들어 팔 의지가 있느냐인 것 같다.”
스웨덴 입양아… 10년 전 스웨덴 나토 가입 예견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스웨덴에 입양됐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과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UC버클리와 스톡홀름대 교수 등을 거쳐 유럽방위청에서 일하면서 유럽연합(EU)의 군사 안보 전략 수립에 핵심 역할을 했다. 러시아의 확장 정책으로 인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이미 10년 전에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5월 핀란드와 스웨덴이 동시에 나토 가입을 신청하자, 2014년 4월 그가 나토의 북유럽 확대에 대해 쓴 미국의 국제 외교 저널 포린어페어스의 글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엔 EU 회원국들의 무기 공동 구매·생산 체계 논의를 주도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4년 전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보기 위해 딱 한 번 찾은 적이 있다. 현재 유럽안보연구소(EUISS) 선임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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