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문제 공급 조직’ 만들어 수억원 챙겼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모의 평가 출제에 참여한 고교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수능 대비 문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에 거액을 받고 팔아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11일 확인됐다.
수능 출제 경력이 있는 교사들끼리 대규모 조직을 만들어 문항을 일타 강사에게 팔고, 차명 출판사까지 차려 십 수억 원을 벌어들였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평가원에 파견 나와 일하는 교사가 일타 강사와 거래했는데도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교사들의 모럴 해저드와 교육 당국의 수능 출제진 관리 부실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은 또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이 ‘일타 강사’ 모의고사 문항과 일치한 것과 관련해 해당 지문이 사전에 유출됐을 정황이 있다고 봤다.
감사원은 이날 이런 내용의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교사 27명과 사교육 업체 관계자 23명, 대학 교수 1명, 평가원 직원 4명 등 56명에 대해 업무 방해와 배임 수재,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교육부에 사교육 업체와 문항 거래를 했다고 자진 신고한 교사 322명 중 신고액이 5000만원 이상인 교사를 우선 조사했다.
◇교사, 문항 판매 조직화… 출제 합숙 중 만나 포섭도
감사원에 따르면, 교사들은 피라미드식 조직(사교육 업체→중간 관리 교사→문항 공급 교사)을 꾸려 문항 거래를 했다. EBS 교재 집필 경력이 있는 한 고교 교사는 다른 교사 35명을 끌어들여 대규모 문항 출제 조직을 운영했다. 그는 배우자 명의로 출판사를 세우고 2019~2021년 문항 판매로 18억9000만원을 벌었다. 이 중 12억5000만원은 다른 교사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졌다.
또 다른 고교 교사는 수능 검토위원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다른 출제·검토위원 교사 8명을 ‘문항 거래 조직’으로 포섭했다. 교사들은 입시 강사 등에게 문제 2000여 개를 팔고 총 6억6000만원을 받았는데, 이 중 2억7000만원은 조직을 구성한 교사가 알선료 명목 등으로 가져갔다. 감사원 측은 “교사들은 대학 동기, 선후배 등으로 조직을 구성했고, 친분 있는 교사를 업체에 새 문항 공급처로 소개했다”고 밝혔다.
한 교사는 2020년부터 3년간 문제를 팔아 5000여 만원을 받았는데, 그 사이 수능·모의 평가 출제위원으로 5번이나 참여했다. 평가원에 파견 근무까지 했다. 평가원은 교사에게 여섯 차례나 ‘사교육 영리 행위’를 확인했는데, 교사는 그때마다 거짓말을 했다.
◇‘수능 판박이 출제’ 4명 수사 요청
감사원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판박이 출제 논란’과 관련된 평가원 직원 4명도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 ‘판박이 사건’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의 책 ‘Too Much Information’ 일부 내용이 대형 입시 업체 조모 강사의 모의고사와 수능, 출간 예정인 EBS 교재에 똑같이 출제된 사건이다.
감사 결과, 국립대 영문과 A 교수가 EBS 교재를 감수하면서 알게 된 지문을 수능 출제에 들어가 그대로 낸 것으로 확인됐다. 강사 조씨는 해당 지문을 현직 고교 교사 B씨에게 사서 모의고사에 냈고, B씨는 EBS 교재에 같은 지문을 출제한 교사 C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감사원은 국립대 교수와 강사 조씨, B·C 교사와의 유착 관계는 확인하지 못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설명하고 있다”면서도 “일부 (유착) 개연성을 확인해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밝혔다.
평가원이 ‘판박이 사건’을 미리 알고도 조치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졌다. 2023학년도 수능 직후 이 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이 215건이나 접수됐는데도 평가원 직원들은 이를 문제 삼지 않으려고 공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이의 심사 결정을 좌우하는 외부 자문위원들에게 “지문이 같아도 문제 유형이 다르면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기준을 강조했다고 한다. 결국 해당 문제는 이의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평가원은 조씨의 모의고사를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은 합리적 이유도 대지 못하고 있다. 평가원은 2021년, 2022년엔 조씨 모의고사를 입수해서 수능에 출제하지 않았는데, 2023년엔 이 모의고사를 입수하지 않았다. 수능 직후 평가원은 “수강생만 볼 수 있는 교재여서 입수하지 못했다”고 외부 자문위원들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모의고사는 인터넷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교재다. 거짓 보고를 한 것이다.
교사들이 EBS 수능 연계 교재를 출간되기도 전에 입시 강사들에게 빼돌린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판박이 논란’ 관련자 조모 강사도 EBS 교재를 출간되기 전에 집필자인 교사에게서 미리 입수해 ‘최신 출제 동향’을 빨리 파악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다른 EBS 집필진 교사도 학원 강사에게 6년간 EBS 변형 문제 8000여 개를 팔아 5억8000만원을 벌었는데, 이 중 1000여 개는 EBS 교재가 출간되기도 전에 강사에게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전, 올해 3분기 사상 최대 매출 기록… 영업이익도 8년 만에 최대
- “마약이 모든 것 앗아가”...檢, 마약 동아리 회원에 징역형
- 주미 대사관, ‘트루스 소셜’ 계정 개설… 트럼프에 속전속결 대응
- 검찰, ‘핼러윈 참사’ 관련 용산구 보건소장에 징역 2년 구형
- 마약 자수한 50대 남성 경찰 유치장에서 사망
- 고의로 ‘쾅’… 사고내고 보험금 받은 183명, 경찰에 붙잡혔다
- ‘3번째 음주운전’ 배우 박상민, 징역 6월에 집유 2년
- 사적제재 사망 논란 부른 ‘음주운전 헌터’ 유튜버 구속영장 심사
- 강서구, 수능시험 당일 ‘특별 종합대책’∙∙∙ 수송차량 배치·출근시간 조정
- 지소연, 국내 리그에 쓴소리 “천막 탈의 외국이면 난리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