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낙태의 자유 다음은 죽는 것 돕기?
최근 세계 최초로 ‘낙태의 자유’를 자국 헌법에 명시하며 여성의 신체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번에는 이른바 ‘조력 자살’의 합법화에 나섰다.
마크롱은 10일 프랑스 일간 라 크루아,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조력 사망’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조력 사망’은 환자가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투약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조력 자살’과 사실상 동일한 개념이다. 조력 자살은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주입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보다 더욱 적극·능동적인 방식이다.
마크롱은 인터뷰에서 “현재 추진되는 법안은 환자 동의뿐 아니라 정확한 법적 기준과 의료 전문가의 소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조력 자살’이나 ‘안락사’라는 용어 대신 ‘조력 사망’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이 법안은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성인’이 단기·중기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고통을 완화할 수 없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조력 사망’은 의료 전문가의 동의하에 환자에게 처방된 치명적 약물을 환자가 스스로 투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신체적 여건상 환자가 직접 하지 못할 경우 제3자의 도움을 받아 투약할 수 있다.
단 미성년자나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는 예외로 분류돼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조력 사망을 선택할 수 없다. 마크롱 행정부는 이 법안을 5월 중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앞서 2005년 이른바 ‘소극적 안락사’로 알려진 연명 치료 중단 제도를 도입한 이후, 2016년에는 의사가 고통스러워하는 말기 환자에게 강력한 안정제를 계속 투여해 수면 상태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인 수준의 안락사나 조력 자살은 금지돼왔다. 이 때문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환자들은 조력 자살이나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나 벨기에·네덜란드 등 주변 국가로 가야 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지병을 앓던 드리스 판아흐트(93) 전 네덜란드 총리가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부부 동반으로 안락사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자유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했다.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는 해묵은 논쟁 거리 중 하나였다. 고통 없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자유를 허락하라는 사회적 목소리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지만, 어떤 형태의 자살도 금기시하는 오래된 가톨릭 전통 때문에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가톨릭계 매체 라 크루아와 좌파적인 색채가 짙은 리베라시옹과 동시에 인터뷰해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법안은 무작위로 선출된 프랑스 시민 184명이 집중 토의를 거쳐 작성됐는데, 이들 중 76%가 안락사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AFP는 이 법안이 국내에서 거센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 오는 5월에 법안이 제출되더라도 내년 이전에는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마크롱이 낙태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한 뒤 1주일 만에 조력 자살 법제화 카드를 꺼내든 정치적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 환경 정책에 반발한 농민들의 대규모 시위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우크라이나 파병 시사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그가 진보·좌파가 주도하던 신체의 자유 관련 이슈를 선점해 국정을 장악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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