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어떻게 라면이 관광상품이 됐을까
부산 경제효과 누리려면 외지인 견인 행사 많아야
어느덧 봄이 오고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홍매화 산수유 등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봄 축제에선 꽃구경을 빠뜨릴 수 없다.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열린다. 1963년 시작해서 올해로 62회째 행사다. 그런데 올해 개막식은 군항제 역사상 가장 이르다. 벚꽃 피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개막식 날짜가 당겨진 것이다. 겨울에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고, 봄꽃이 일찍 피는 등 기후변화 영향으로 전국의 많은 계절축제가 개최 시기를 바꾸고 있다.
날씨 탓은 아니지만 올해 ‘기장멸치축제’가 열리지 않는다. 4월 축제가 열리면 대변항 멸치털이도 구경하고 가족 외식을 했던 많은 시민이 아쉬워하고 있다. 1997년 시작된 축제는 코로나19 사태로 2020, 2021년 개최되지 않았다가 2022년 재개했다. 그런데 2년 만에 또다시 취소된 것이다. 축제 기간 매년 15만~20만 명이 멸치축제를 찾았다.
멸치축제를 열지 못하는 이유는 재정난이다. 대변마을 상인과 주민 등으로 구성된 기장멸치축제 추진위원회는 그동안 기장군의 보조금(1억~1억2000만 원)외 매년 2억 원의 축제 비용을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후원이나 부스 운영을 통해 비용 확보에 나섰지만 불황으로 예전 같지 않았다. 축제 지원인력인 청년회와 부녀회의 고령화도 한 몫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 한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가 부산 55개, 경남 135개, 경기 144개 등 1170개다. 축제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경쟁력 있는 축제는 문체부가 별도로 ‘문화관광축제’라는 이름으로 예산 및 컨설팅, 홍보 등을 지원한다. 사실 축제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축제가 성공적이지 않다면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축제 콘텐츠가 풍성하고 차별화돼야 한다. 지난해 ‘기장멸치축제’에서는 맨손 활어잡기나 미역채취 체험 등 체험형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몸값 비싼 유명 가수들을 초대하는 가요제 록페스티벌 국악공연 등 부대행사가 많았다. 축제에 춤과 노래를 빠뜨릴 수 없으나 멸치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보강한다면 적은 예산으로 많은 이가 즐기는 축제로 만들 수 있지 싶다.
흔히 경북 구미하면 삼성전자가 떠오르는 산업도시다. 그만큼 볼거리가 없다고 짐작한다. 딱히 관광객을 불러올 아이템이 없는 구미가 3년 전부터 11월이면 ‘라면축제’를 열고 있다. 구미에 신라면 국내 생산의 80%를 담당하는 농심 공장이 있고 색다른 라면을 즐기려는 MZ세대가 많다는 데 착안했다. 라면을 주제로 축제를 열다니 쌈박하다. 지난해에는 ‘즐길라면! 라면로드’ ‘쉴라면! 힐링거리’ 등 4가지 테마존을 구성했는데 10만 명이 참가했다. 성공 비결은 조직위원회가 콘텐츠를 제대로 살리고 운영을 원활하게 한데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지역 축제는 아이템을 잘 선택하면 적은 예산 투입으로 경제적·비경제적 파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부산에서 열리는 55개 축제 중 경쟁력 있는 축제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물론 부산에도 보령머드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 함평나비축제 산천어축제같은 유명 축제가 있다. 부산불꽃축제 부산록페스티벌은 전국구 행사다. 이런 대규모 축제는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지난해 10월 사상구 삼락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린 ‘부산록페스티벌’은 입장권이 1일권 11만 원, 2일권 16만5000원인 유료 행사지만 3만 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든 아티스트들을 섭외했고 돼지국밥 어묵 등 다양한 부산 먹거리를 판매했다. 축제 내내 먹고 즐길 수 있어 참가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외지 관광객들의 체류 시설이 부족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간에 열리다 보니 숙소 잡기가 어렵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지난달 축제조직위 정기총회에서 지난 2년간 조직을 맡았던 고인범 집행위원장이 다시 위촉됐다. 임기 2기를 맞은 고 위원장은 올해 부산 축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다짐했다. 대표적으로 부산바다축제의 주무대를 해운대에서 다대포해수욕장으로 옮기고 프로그램을 다양화한다. 경제 교육 등에서 심화하는 동서격차가 문화행사도 마찬가지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처음 열린 불꽃축제가 서부산권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도 그의 결심에 힘을 실어줬다.
부산은 바다와 산이라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역사적 유산 등 많은 관광자원이 있다. 킬러 콘텐츠를 갖춘 지역축제가 많다면 금상첨화일게다. 부산시와 각 지자체, 민간 등 축제 주최는 더는 틀에 박혀 의례적으로 축제를 열어선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차별화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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