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지식의 순환이 필요하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남은 유일한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대부분의 시간을 수렵 채집인으로 살다가 대략 1만 년 전부터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다른 생물 종과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이는 최초로 지구 생태계의 한 생물 종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자연 환경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믿기 힘든 속도로 인류는 문명을 건설하면서 급기야는 과학이라는 지적 활동을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 과학을 강의하고 글을 쓰며 최신의 결과들을 접하는 필자는 늘 인류의 지적 성과에 경이로움을 느껴왔고 앞으로 드러날 우리 세계의 비밀을 흥미롭게 기다리고 살고 있다. 과학이 이처럼 경이로울 수 있는 바탕에는 수학이라는 연역적이며 논리적 학문과 실험, 관찰이란 경험적 방법이 결합되어 이론의 형식이 세워지고 검증을 통해 수정 보완되어 가는 지식이라는 점이 있다. 즉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객관적 지식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생태계가 공멸의 위기에 처한 지금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지식이 또한 과학이니만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과학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은 만큼 또한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지구의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과 소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마 과학 이전 시대, 또는 과학문명과 동떨어진 원시의 인류 역시 경험과 지능을 활용하여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위험에 민감하게 대처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실제 원시부족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자료들을 보면 매우 놀라운 사례가 많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고증에 의하면 선사시대 농부들은 지역의 식물들에 대해 오늘날 소수의 전문 식물학자를 뺀 그 누구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인류학자 잭 웨더포드는 “초기 원주민 농부들이 시행착오의 방법으로 만들어놓은 식물 다양성의 보고가 없다면 현대과학은 출발할 수 있는 밑천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땅의 지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바닷새의 배설물인 ‘구아노’를 비료로 사용하였는데 반해 유럽의 정복자들이 비료의 가치를 깨닫는데 그로부터 수백 년이 걸렸다. 백신을 통해 인류를 천연두로부터 구원한 인물로 에드워드 제너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천연두 예방법을 북아메리카에 들여온 아프리카인은 오네시무스라는 이름의 노예였다.
그 밖에도 항해술이나 재료기술, 천문학 등에서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과학이 과학자들만의 성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마이클 폴라니는 인류의 지식 종류를 과학과 같이 객관적이고 언어화된 형식지(explicit knowledge) 또는 명시지와 경험이나 노하우로부터 얻어진 것으로 형식을 갖추어 나타내기 힘든 암묵지(tacit knowledge)로 구분했다.
현재 이 개념들은 기업경영 등의 분야에서 쓰이고 있지만 애초에 폴라니는 과학적 객관성이 자유로운 철학적 사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취지에서 암묵지 개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물론 현대 과학의 역할로 볼 때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주저되지만 형식지인 최첨단 과학과 체계화되지 않은 암묵지들의 만남이 거의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지금의 시대에 다시금 이 두 지식 체계의 결합과 순환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형식지만으로 총체적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수 없다. 과학의 눈으로 잘 볼 수 없었지만 오랜 경험에 의한 생태적 지혜가 존재할지 모르는 암묵지와의 상보적 관계를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필자가 일하는 온배움터도 삶과 학문의 조화, 즉 형식지와 암묵지의 순환을 기본 철학으로 삼으면서 학자와 장인들이 혼합된 교수진을 구성하여 출발했다. 또한 지식순환협동조합 역시 학문의 통합과 더불어 두 지식을 순환시킴으로써 대안 사회로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매우 힘들고 지난한 일일 수 있지만 이러한 노력 없이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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