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청년은 무조건 약자? 폐지 줍는 노인이 먼저다
저숙련 여성·지방 고졸 청년 등 뭉뚝한 세대론보다 세밀 접근을
친구들과 서울 강남이나 성수동처럼 ‘힙하다’고 알려진 동네에서 저녁을 먹다 보면 종종 착잡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폐지 줍는 노인을 목격할 때다. 한껏 멋을 낸 청춘남녀 사이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이 폐지를 줍고 있는 모습만큼 삶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장면은 없으리라. 누가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요, 나이 든 건 죄가 아니라고 했나. 굽은 허리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있는 그 노인들은 단지 늙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시시포스보다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었다. 제우스의 분노도 한국 사회 현실만큼 모질진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하반기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실태 조사는 전국의 폐지 수집 노인 수를 약 4만2000명으로 추계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6세. 하루 5.4시간씩 주 6일을 폐지 줍는 데 쓰고 있지만 월 소득은 15만9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누구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는지는 몰라도 이런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다소 의외의 사실도 알게 됐다. 실태 조사가 진행된 게 작년이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우리나라 노인 빈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이다. 그런데 다들 노인빈곤율이 40.4%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네, 70세 이상 노인 10만 명당 98.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네(모두 2023년 기준) 말은 많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소외된 집단에 얼마나 무심했는가를 새삼 깨달았다.
정치권은 단순한 세대론을 선호한다. 그 세계관에서 기성세대는 강자고 청년은 약자다. 고령의 국회가 청년보다 노인을 비롯한 기성세대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주장은 단골 레퍼토리다. 그래서 정치의 포커스는 으레 청년들에게 맞춰진다. 2015년 ‘헬조선’ 열풍이 한국 사회를 휩쓴 뒤에는 분노한 청년들을 달래기 위한 각종 정책이 쏟아졌다. 엄청난 규모의 구직·주거 비용을 지원했고 지역마다 관련 단체들이 활동할 센터를 만들었다. 더한 경우에는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처럼 단지 청년이라는 이유 하나로 돈을 주기도 했다. 청년 딱지만 붙이면 실효성이나 우선순위를 따지는 비판은 사그라들었다.
단편적인 세대론에 진짜 약자들의 삶은 묻혔다. 폐지 줍는 노인, 저숙련 일자리에 종사하는 중장년 여성,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5060 남성들이 대표적이다. 사실 청년 담론도 ‘지방 공장에서 일하는 고졸’ 청년들은 배제된 채 ‘수도권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에게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정치·사회적으로 대변해 줄 사람이 없는 약자들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기업 여성 임원 비중을 늘리고 대학생들에게 저렴한 아침밥을 제공하자는 정치인은 있었어도 저들의 삶을 돌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은 없지 않았나.
청년은 약자이니까 무슨 무슨 지원을 늘리자고 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2030 세대는 이 사회가 공정하고 상식적으로 돌아가길 바랄 뿐, 뭘 퍼준다고 지지하지 않는다. 각종 지원 사업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울뿐더러 그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럴 돈이 있다면 먼저 지원해야 할 건 당장 끼니와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노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공천이 끝나면 각 당은 세대별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그들의 세대 접근법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년은 약자”라는 식의 뭉뚝한 세대론을 펴는 정당보다 세밀하게 접근하는 정당에 표를 줘야 한다. 디테일은 결국 국민을 향한 애정과 관심 어린 관찰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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