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美 박물관서 사라진 유물들
최근 미국 박물관에는 빈 전시관이 많아지고 있다. 1866년 세워져 세계 최고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 박물관인 하버드 피바디 고고인류학 박물관도 예외가 아니다. 피바디 박물관은 미 대륙 원주민 역사를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해당 전시관 곳곳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문화적 감수성(cultural sensitivities) 문제로 철수했음’이라는 표지판만 있다.
‘문화적 감수성’이란 미국 사회에서 핍박받고 멸족된 미 원주민들에 대한 배려를 의미한다. 미국은 1990년 ‘미국 원주민 유물 보호와 반환법(NAGPRA)’을 제정하고 불법으로 수집한 원주민 유해와 부장품, 제의 용품 등을 반환하도록 했다. 지난 1월 개정된 시행령에서는 그러한 유물 전시를 위해 관련 부족의 사전 동의를 받을 것을 명시했다. 이에 박물관들은 부랴부랴 동의를 얻지 못한 유물들을 빼야 했고, 심지어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은 전시실 두 곳을 아예 폐쇄하기도 했다.
실제로 피바디 박물관의 여러 유물 역시 원주민 약탈과 학대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하버드대 인류학자였던 조지 우드버리는 1930년대 초 미 전역의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어린 학생 700여 명의 머리카락을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했다. 미국은 1819년부터 백인 동화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기숙학교를 세워 150여 년간 원주민 아동을 집단 수용하고 교육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신체적, 정서적 학대의 증거는 물론 집단 매장지까지 발견되고 있어 사람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우드버리 컬렉션은 머리카락을 신성시했던 원주민에 대한 착취와 탄압의 상징인 셈이다. 피바디 박물관은 현재 머리카락을 돌려주기 위해 그 직계 자손 및 공동체와 협의 중이다.
제인 피커링 피바디 박물관장은 지난해 10월 하버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NAGPRA 법의 의미가 단순히 유물을 돌려주고 사과하며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의 윤리적 책무를 기억하고 피해자들과 화해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비록 늦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바르게 전시하겠다는 의지가 빈 전시관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에 가슴이 설렌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친명 조직, 지지자 ‘총동원령’에... 與주진우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
- 시총 1위 엔비디아, 20일에 실적 공개되는데
- 법원, ‘피의자 모친 성관계 요구’ 경찰에 2심서 감형 “합의된 점 고려”
- [크로스워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영어 약자는?
- “약 8알 먹어도 두통 안 사라져”… 토니안, 우울증·대인기피증 고백
- 光州 140억 문화센터 800m 옆 450억 문화센터 건립…국토부 ‘퇴짜’
- [속보] 金여사 특검법, 국회 본회의 세번째 통과…여당 표결 불참
- 쿠팡 김범석, 1500만주 매각... 4800억원 현금화
- HD Hyundai promotes Chung Ki-sun to Senior Vice Chairman amid executive reshuffle
- 부산 오시리아관광단지에 5성급 ‘신라 모노그램’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