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배상 대부분 20~60% 받을 듯
은행과 증권사들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과정에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고령층 가입을 종용하는 등 불완전 판매 사례가 금융 당국 검사 결과 대거 적발됐다. 판매사(은행 5곳, 증권사 6곳)들이 영업 목표나 성과 지표 달성을 위해 조직적으로 불완전 판매에 나선 정황도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은 11일 이 같은 내용의 ‘홍콩H지수 ELS 검사 결과 및 분쟁 조정 기준안’을 발표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일부 ELS 판매사는 고객 손실 위험이 커진 시기에도 판매 한도 관리를 하지 않거나, 성과 평가 지표(KPI)를 통해 판매를 독려, 불완전 판매를 조장했다”며 “그 결과 상품 판매 제도가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개별 판매 과정에서 다양한 유형의 불완전 판매가 발생했다”고 했다. 금감원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 등을 고려해 판매사가 손실액의 0~100%까지 배상하는 분쟁 조정 기준안도 발표했다. 실제 배상받는 비율은 20∼60%가 가장 많을 것으로 금감원은 추정했다.
홍콩H지수 ELS는 홍콩 H지수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금융 상품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홍콩 ELS 판매 잔액은 총 18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에서만 15조4000억원어치가 팔렸다. 개인 39만명(계좌 수 기준)이 넣은 돈만 17조3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1~2월 만기 도래액 2조2000억원 중 손실 금액은 1조2000억원으로 누적 손실률은 54%를 기록했다.
금감원이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홍콩 ELS 주요 판매사 11곳(은행 5곳, 증권사 6곳)을 현장 조사한 결과, 소비자 보호 관리 실태가 전반적으로 부실하고 불완전 판매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금 보존’이나 ‘1년 미만 단기 투자’를 희망한 고령층 등 금융 취약 계층을 상대로 ‘약탈’에 가까운 영업을 벌인 사례도 많았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87세 투자자 C씨는 2021년 6월 시중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H지수 ELS 투자를 사실상 강매당했다. 평소 청력이 좋지 않은 C씨는 “들리지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창구 직원은 “이해했다”고 답해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했다. “중도 해지 수수료가 무엇이냐”는 C씨 질문에는 “‘될 수 있으면 해지하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은행은 ELS를 포함한 신탁 상품 수수료 목표를 전년보다 30% 정도 높여 잡아 직원들의 ELS 과열 판매를 조장한 것으로 금감원은 봤다.
2021년 3월 다른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87세 투자자 D씨의 투자 성향 분석 과정에서 “예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체크하면 ELS 가입이 안 된다”며 투자 성향이 높게 나오도록 사실상 조작을 했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투자자 성향 분석 시 6항목(거래 목적, 위험에 대한 태도, 금융 상품 이해도, 재산 상황, 투자성 상품 경험, 연령)을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이를 누락하는 등 부실하게 시스템을 운영한 사례들이 적발됐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 취약층을 대상으로 위험한 파생 금융 상품을 많이 팔아 고과를 잘 받고 승진한 은행 임직원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고령자에게 ‘이해했다’는 대답을 강요해 ELS를 판 경우는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금감원은 “고의로 고객을 속이는 기망 및 편취 혐의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번 ELS 대규모 손실의 원인으로 금융사들의 무리한 실적 경쟁을 꼽았다. ELS 판매사들은 홍콩H지수의 등락 폭이 커지는 시기에 영업 목표를 오히려 상향 조정하며 판매를 독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은행은 ELS 관련 성과 평가 지표(KPI) 배점을 총점수의 60% 이상으로 잡아 고위험 상품 판매를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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