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데뷔 첫 월드 투어… 서울 6만 관객으로 시작
“일흔한 살까지 체조(경기장)를 꽉 채우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인데, 이 곡이 그때까지 세트 리스트(곡 목록)에서 빠질 일이 있을까 싶네요.”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올림픽체조경기장) 무대에 선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31)의 말에 공연장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이 밤~”으로 시작하는 대표곡 ‘밤 편지’의 첫 소절이 흐르자 1만4000여 명 관객의 초록빛 응원봉이 가사 속 반딧불처럼 일제히 살랑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도 70대까지 이 자리를 채우겠다”는 화답 같았다.
이날 이곳에서 오후 5시부터 아이유의 단독 공연이자 데뷔 16년 만에 나선 첫 글로벌 월드 투어 ‘H.E.R’의 출정식이 열렸다. 아이유는 2·3일, 9·10일 4일간 약 6만 관객을 만난 서울 공연(티켓값 13만2000원~16만5000원)을 시작으로 일본,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영국, 독일, 태국, 미국 등 12국 18도시 순회 공연을 펼친다. 아시아를 넘어 영미권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건 처음이다. 미국 6도시 콘서트(약 10만 6000석)는 예매 시작 직후 전부 매진됐다.
아이유의 월드투어 성과는 K팝에 대한 세계 음악계의 또 다른 평가 척도가 될 전망이다. 그의 이름이 해외에서도 ‘K팝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하나로 꼽혀왔기 때문. 지난해 1월 미국 음악 전문 잡지 ‘롤링스톤’이 발표한 ‘(지난 100년간)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200′에 오른 K팝 가수도 아이유(135위)와 BTS 정국(191위)뿐이었다. 미국 그래미 어워드 8관왕 가수 로린 힐(136위)보다 아이유를 윗줄에 놓은 롤링스톤은 “2010년 3단 고음으로 호평받은 ‘좋은 날’ 이후 한국 음악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가수”라며 “부드러운 음색과 폭넓은 음역대는 물론 보사노바, 팝, 재즈, 발라드 등 폭넓은 장르를 소화한다”고 평했다.
이번 아이유의 월드투어 선곡도 그런 호평에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약 4시간 20분 동안 데뷔 초 히트곡부터 ‘Love wins all’ ‘홀씨’ ‘쇼퍼’ ‘Shh..’ 등 지난달 낸 신보 ‘더 위닝’의 신곡까지 32곡을 팝, 힙합, 재즈, 보사노바, 블루스, 록 등을 오가며 펼쳐 냈다. ‘잼잼’ ‘Obliviate’ 등 몽환적인 곡을 배치한 Hypnotic(최면처럼 홀리는)’, ‘Celebrity’ ‘Blueming’ 등 신나고 팝적인 곡들로 꾸린 ‘Energetic(활력적인)’, ‘너의 의미’ ‘금요일에 만나요’ 등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은 곡들을 주로 선보인 ‘Romantic(사랑스러운)’, 최근 낸 신곡들을 주로 선보인 ‘Ecstatic(황홀해 하는)’과 앵콜 무대 ‘Heroic(영웅적인)’까지. 영문 이름을 붙인 5막의 성격에 따라 마치 뮤지컬처럼 무대를 나눈 것도 해외 팬에게 쉽게 다가갈 영리한 전략으로 보였다. 객석이 360도로 감싼 독특한 구조의 무대를 ‘홀씨(곡 홀씨)’ ‘H.E.R(Shh..)’ ‘박스(Love wins)’ 등 신곡 상징물을 본떠 만든 리프트를 활용해 꾸미고, 첫 곡과 끝 곡을 ‘홀씨’로 맞춰 수미상관을 이룬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공연 막바지 1시간 20분가량을 즉석 신청곡으로 꾸린 일명 ‘앵앵콜(앵콜의 앵콜)’ 무대는 아이유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인 순간이었다. 그는 ‘Red Queen’ ‘을의 연애’ ‘이런엔딩’ 등 객석에서 가장 크게 외친 신청곡 중 콘서트 밴드가 반주할 수 있는 걸 골라내 잼(즉흥연주)처럼 노래했다. 가장 큰 환호성은 아이유가 선배 가수들의 곡을 재해석한 2017년 앨범 ‘꽃갈피 둘’의 수록곡 ‘어젯밤 이야기’(원곡 소방차) 차지였다. 대부분이 20~30대인 공연장에서 1987년 발매곡으로 열광의 도가니를 이끄는 모습이 ‘아이유’ 세 글자가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위치한 역할을 되새기게 했다.
이날 아이유는 “월드 투어를 마무리한 후 오는 9월 21~22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추가 공연을 연다”고 깜짝 발표했다. 2022년 잠실주경기장에 세운 ‘K팝 여가수 최초의 입성 기록’을 상암에서도 세우게 된 것이다. 두 경기장 모두 5만~6만 명 규모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가수만이 서는 최고 영예의 무대로 꼽힌다. “30대가 되어서도 도전을 계속 한다”며 아이유가 말했다. “9월에 다시 만나요. 제가 다른 도시들에서 어떤 꿈들을 꿨는지 알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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