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K' 이니셜 불편하십니까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2024. 3. 1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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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

최근 한 방송사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다. K콘텐츠에 대해 언급할 대목이 있었다. 2024년에도 다양한 K콘텐츠의 활약이 있을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 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지적하는 패널이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말을 제법 유창하게 하는 국내 거주민이었다. 지적의 요지는 K라는 머리글자를 아무 데나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일견 일리가 있었다.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를 생각할 수 있어 보였다. K는 이니셜이다. 본래 이니셜은 각 명칭의 앞글자만 부각하는 축약어로 K는 Korea를 뜻하는데 이를 모든 영역에 붙이는 것은 사람에 따라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더구나 K가 붙는 대상은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다. 이는 드라마나 영화, 게임, 노래가 모두 마찬가지다. 음식이나 옷은 물론 스포츠에도 K가 붙고 있다. 민간기업이나 점포의 판매제품에 한국을 뜻하는 K를 모두 붙이려 하니 무분별한 K의 남용이 지적될 수 있었다. 과연 그들이 Korea를 전제하고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K가 붙는 현상은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와 다르다. 더구나 문화적 다양성, 특히 한국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외부의 시선으로만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K 이니셜 호칭은 국가가 주도하고 있지 않다. 과거 정부주도형이나 권위주의 정부의 행정력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강요되고 있지 않다. 근본적으로 한류현상 자체는 정부가 만들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민간에서 정부를 이끌어왔다. 뒤늦게 정부가 그 효과를 활용하려 했다. 시장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해온 가운데 맺은 결실들이다. 거꾸로 정부 정책에 민간이 끌려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창의력과 상품성의 다변화가 제한될 수 있다.

K 이니셜을 강조하는 것은 세계인들에게도 바람직하다. 한국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향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품과 서비스가 세계에 걸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러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국가를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자국우월주의 같은 태도와는 달라야 한다. 또한 문화침투나 점령이라는 단어가 횡행하는 담론의 생산은 주의해야 한다. 그 반작용으로 혐한 사례도 있었다. 물론 K콘텐츠는 이런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부존자원이 부족해 가공과 창조를 통해서 부가가치를 증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적인 브랜드 효과를 기해야 유리하다. 미국, 일본이나 중국처럼 큰 나라가 아니기에 유통 장악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각 기업의 개별적인 고군분투는 효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파생효과를 생각했을 때 K 이니셜은 중소기업의 제품을 홍보·마케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작은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쉽게 성장할 수 있는 미국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한 갈수록 개인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K의 자발적 강조는 공동체적 가치를 생각하고 구성원을 결집해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은 서구가 직면한 고민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갈수록 현대사회는 개별적 욕망의 분출에 분산되는 구심력 때문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 집합적 연대의 가치는 우리가 위기상황에 봉착했을 때 동력이 될 수 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하면 자칫 연대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사분오열할 수 있다. 특히 문화의 힘은 이런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K 이니셜만 강조하고 실제적인 내용물에서 질적인 도약의 고민과 노력, 성취가 없다면 속 빈 강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K 이니셜에 맞는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기 위해 부단히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는 언제든 있다. 누가 뭐래도 문화적 다양성 측면과 경제적인 면에서 K 이니셜은 세계 속에 있을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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