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11] 밥 안 먹는 아이를 키우는 자세

교사 김혜인 2024. 3. 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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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오늘도 아이를 따라다니며 밥을 먹인다.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장난감으로 유인해 본다. 내가 이런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육아 전문가들은 이유식부터 아이의 밥상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일정한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밥 먹기를 배워야 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아이가 앉을 하이체어를 미리 마련해 두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이유식과 밥을 준비해서 식탁에 두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런 대로 따라주었다. 이유식을 아주 잘 먹는 편은 아니었으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며 흥미를 유도하면 어떻게든 받아 먹었다. 유아식을 시작하고 나서는 스스로 고기와 주먹밥을 야무지게 손으로 집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밥에서 점점 관심이 멀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기를 거부하고 몸을 돌려 다른 곳만 쳐다본다. 어쩌다 먹은 것도 뱉어내기 일쑤다. 웬만한 아이는 다 잘 먹는다는 슈렉 소세지, 김가루 주먹밥, 계란찜, 소고기 완자 등을 동원해 보았지만 먹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다 먹게 되어 있단다. 나는 애써 준비했던 밥을 과감히 치운다. 현명한 엄마라면 이런 때 아이가 안 먹는다고 화내지 않고 재료와 조리법을 바꾼다고 했다. 재료를 바꿔 본다. 조리법을 바꿔 본다. 간을 더 해 본다. 시판 반찬을 사 본다. 그래도 안 먹으니 다시 굶겨 본다.

그렇게 아이와 기싸움(?)을 했지만 내가 지고 말았다. 아이는 살만 쭉쭉 빠질 뿐 밥에 관심이 없다. 배가 홀쭉해지고 가슴뼈가 드러났다. 결국 나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기를 때때로 포기했다. 천방지축 돌아다니며 노는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먹인다. 건강한 음식만을 먹이겠다는 포부는 진작에 버렸다. 지금은 어떻게든 아이를 먹여서 몸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교사로서 나는 학생 생활 태도에 꽤 엄격한 편이었다. 그럴 수 있던 건 순전히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아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까다롭고 떼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엄격한 부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곤 했다. 전혀 아니었다. 아이 기질 앞에서 우리는 항복하고 말았다. 통제적이었던 나는 허용적인 엄마가 되었고, 본래 허용적이었던 남편은 더 허용적인 아빠가 되었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일 때 사람들은 부모의 양육 방식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거나 간식으로 아이 배를 채우는 엄마를 보며 왜 저렇게 키우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엄마가 마음이 너무 약해서, 엄마의 노력이 부족해서 문제라고 생각했다. 정말 안 먹는 아이를 키워 보니 양육 주도권을 생각보다 아이가 많이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 기질과 특성에 따라 부모 양육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쩌다 잠깐 일부만 보는 남들은 모르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우리 아이는 구강 감각이 예민하다. 맛이나 식감에 아주 예민해서 평소 잘 먹던 음식이라도 조금만 달라지면 혀에 닿자마자 뱉는다. 국수와 미역은 쳐다만 봐도 싫어하는 걸 보면 시각 영향도 큰 듯하다. 음식물 크기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당연히 편식이 심하고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의 밥 먹는 사정이 이러하니 아이가 수저질을 스스로 하기를 아직 바라지도 못한다. 그저 내가 먹여줄 때 입을 벌려 받아 먹고 뱉어내지 않는 것만으로 고맙게 느껴질 지경이다.

또래보다 느린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숟가락질 좀 더 늦는다고 뭐가 대수겠는가. 편식이 심한 게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어쩌겠는가. 이왕 느긋하게 살기로 한 거, 좀 더 기다려보자. 언젠가 우리 아이도 더 크고 싶다며 밥을 더 먹는 날이 오겠지.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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