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요리를 배워보기로 했다[2030세상/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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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올 때 반찬통들 좀 가져와라." 엄마는 매번 반찬통이 부족하다.
냉장고에 엄마 반찬이 채워지면 허기진 마음도 채워진다.
"우아, 대박!" 이번에 '간단히' 싸 왔다는 반찬 보따리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양념게장과 겉절이가 들어 있었다.
"맛있는 겉절이 하나만 뚝딱 만들 수 있어도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지 않아?" 문득, 엄마에게 요리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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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대박!” 이번에 ‘간단히’ 싸 왔다는 반찬 보따리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양념게장과 겉절이가 들어 있었다. 간장게장은 사 먹어도 제법 솜씨 좋은 집들이 많은데 양념게장은 그렇지 않다. 재료 자체도 덜 싱싱한 것을 쓰는 경우가 많거니와, 양념도 내 입에는 너무 달다. 세 딸이 다 엄마표 게장만을 찾으니 딸들이 오는 날은 엄마가 게장을 만들어 두는 날이 됐다. 겉절이는 오랜만이었다. 어릴 땐 김치 담그는 엄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간 좀 보라며 손으로 쭉 찢어 돌돌 말아 입에 넣어주는 것을 받아먹곤 했다. 그러다 결국 밥솥에서 흰밥을 떠와 밥 몇 술을 뜨고야 말았던 것은 비단 우리 집만의 모습은 아니었을 테지.
갓 만든 겉절이. 엄마는 뚝딱 만들지만 엄마 없이는 좀처럼 먹지 않았던 음식. 그 반찬통 하나에 며칠간의 식사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말했다. “맛있는 겉절이 하나만 뚝딱 만들 수 있어도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지 않아?” 문득, 엄마에게 요리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바빠지고 약속이 많아지면서 요리와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가끔 하더라도 손이 많이 가는 밑반찬보다는 한 끼 식사로 끝낼 수 있는 일품요리가 주를 이뤘고, 뭐가 됐든 인터넷만 검색해도 레시피는 넘쳐나니 당장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주아주 나중에, ‘엄마 밥’이 먹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잠깐씩이나마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못된 생각을 씻기라도 하듯 부정하기 바빴다.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두는 수밖에 없다고 막연히 외면했다. 그러다 갑자기 전에 없던 결심이 선 것은 ‘겉절이여서’였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면서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동시에 집마다 맛이 다른 음식. 엄마가 어떤 재료, 어떤 제품을, 어떤 비율로 쓰는지 알지 못하면 먼 훗날 언젠가는 재연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지 모르는.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을.
“엄마, 나 주말에 요리 배우러 가도 돼?” 내친김에 게장까지 배워보기로 하고, 그 옛날 초등학교 ‘가정’ 과목 실습 시간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선생님 옆에 선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누구로부터든 점수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되도록 천천히 알기를 바라는 먼 훗날의 어떤 그리움을 꼭꼭 씹어 예습하는 마음으로.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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