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 서러움 씻어낸 놀런... ‘오펜하이머’ 아카데미 7관왕
그의 실패는 고고한 아카데미의 역사도 바꿨다. 2009년 그의 영화가 5편의 작품상 후보에 들지 못하자 분노한 영화인들과 평론가 사이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엄청난 비판에 두 손 든 아카데미는 이듬해인 2010년부터 작품상 후보작을 10편으로 늘렸다. 당시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영화 ‘다크 나이트’의 크리스토퍼 놀런(54) 감독은 이후에도 아카데미와 좀체 인연이 없었다. 2013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평단의 찬사와 흥행 성공을 끌어냈으나 한 부문도 후보에 들지 못했다. ‘인셉션’은 작품상에 올랐으나 고배를 마셨으며, 처음 감독상에 지명된 ‘덩케르크’로도 수상이 불발됐다. 일부에서는 “흥행이 잘된 게 오히려 예술 영화에 고점을 주는 아카데미 수상에 독이 됐다”고 했다. ‘아카데미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저주가 15년 만에 깨졌다. 10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개최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놀런은 영화 ‘오펜하이머’로 마침내 감독상을 받았다. 시상자로는 놀런만큼이나 오래 아카데미의 홀대를 받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나섰다. 놀런은 소감에서 “이 여행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저를 여행의 의미 있는 부분 중 하나로 생각해주시다니 너무나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 “저의 모든 영화와 모든 아이들의 프로듀서인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놀런, 아카데미 저주 깨고 마침내 감독상
놀런이 말한 ‘프로듀서’는 ‘오펜하이머’ 프로듀서이기도 한 에마 토머스(53)다. 대학교(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네 자녀를 뒀다. 놀런의 권유로 영화 일에 뛰어든 에마 토머스는 1997년 결혼 이후 놀런의 모든 영화에 프로듀서로 함께했다. 그녀는 이날 ‘오펜하이머’ 작품상 트로피를 받으며 “꿈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은 유일하고 빛나는 크리스 놀런 덕분”이라며 부창부수(夫唱婦隨) 소감을 전했다.
‘오펜하이머'는 이날 감독과 작품상 외에도 남우주연, 남우조연, 편집, 촬영, 음악상 등 7부문을 휩쓸었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킬리언 머피는 첫 후보 지명에 수상했다. 그는 오펜하이머의 천재성과 인간적 고뇌를 완벽하게 보여줘 일찌감치 주연상을 예약해놨다는 평을 받았다. 머피는 소감에서 “오펜하이머가 만든 이 세상에서, 평화를 가능케 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머피만큼이나 수상이 확실시됐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여유 있게 시상대에 올랐다.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앙숙인 루이스 스트로스로 출연한 그는 “나의 끔찍한 유년 시절에 감사한다”며 입을 열었다. 약물 복용 논란으로 연기 경력이 끝날 뻔한 과거를 회상한 말이었다. 그는 이어 “45년 경력 중 절반을 저를 구해내느라 보낸 변호사, 제 자신을 찾게 해준 아내, 그리고 동료 여러분 덕분에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됐다”며 감사를 전했다.
◇경합 여우주연상, 에마 스톤 품에
가장 경합이 심했던 여우주연상 부문은 ‘가여운 것들’의 에마 스톤이 받았다. ‘라라랜드’(2017)에 이어 2번째 수상이다. 미 언론에서는 ‘플라워 킬링 문’의 인디언 여인 몰리를 연기한 릴리 글래드스톤의 수상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으나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여자 프랑켄슈타인 역을 혼신의 연기력으로 소화한 스톤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감격해 눈물을 쏟으며 시상대에 선 그녀는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만들어준 세 살 딸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몽환적인 화면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가여운 것들’은 미술·분장·의상 등 아트 관련 3개 상을 모두 가져갔다.
이날 특히 많은 박수가 쏟아진 부문은 장편 다큐멘터리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담은 ‘마리우폴에서의 20일’로 우크라이나 최초 오스카를 안은 엠스티슬라브 체르노프 감독은 “차라리 이 영화를 만들 수 없기를 빌었다”며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영화로는 마리우폴 시민을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인 추모 영상에 이선균도
이날 시상식에서 상영된 영화인 추모 영상에는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배우 이선균도 포함됐다. 아카데미는 직전 해에 세상을 떠난 영화인을 기리는 영상을 매해 보여준다. 올해는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 bye)’를 부르는 가운데 배우 매슈 페리, 제인 버킨,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의 생전 모습이 흘러갔다. 이선균은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를 때 시상식에 참석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라 수상 여부가 주목됐던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은 상을 받지 못했다. 각본상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를 쓴 쥐스틴 트리에 감독과 아서 하라리가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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