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 할수록 임금 낮다니… 뭔가 잘못된 구조”

김효실 기자 2024. 3. 1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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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조선소 여성노동자 11명의 일과 삶 이야기 담은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자료 사진. 게티 이미지 뱅크.

김행복은 마흔네 살 때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청소일을 시작했다. 소속 청소업체가 수차례 바뀌고 조선소는 한화오션 사업장이 됐지만, 김행복은 여전히 새벽에 출근해 오후 퇴근 시간까지 사업장 청결을 담당한다. 어느 날 사무실 아저씨들이 김행복을 향해 말했단다. “집에는 반짝반짝하겠네.” 김행복은 이렇게 답했다. “무슨 소리 하시나요. 여기는 돈을 주니까 이리 반짝반짝하게 하지.”

여자의 일생은 노동이다. 누군들 노동 빠진 인생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여자들의 노동엔 어떤 ‘고구마’들이 가득하다는 특성이 있다. 가령 김행복이 “회사에서 일한 것에 대한 보수를 받는” 노동과 집에서 하는 무급 가사노동을 구분 짓는다는 점을 굳이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현실에선 ‘다 같은 여성노동자’라고 부를 만한 공통점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여성노동자’라는 집단 명명이 유효한 국면이 생긴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하고 김그루·박희정·이은주·이호연·홍세미가 기록한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코난북스 펴냄)는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11명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배 한 척을 만들기 위해서는 쇠와 쇠를 이어붙이고(용접), 쇠를 깎고(밀링), 쇠가 녹슬지 않게 색을 칠하는(도장) 노동이 필요하다. 이런 일이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높은 공간에서의 작업을 돕는 비계(발판)를 만들고 탱크 속 산소 농도 등을 주기적으로 측정하거나 불꽃이 화재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밀폐·화기 감시 노동, 노동자들의 식사와 청결, 작업복·수건 세탁을 책임지는 노동도 필수다. 이 모든 노동 영역에 여성들이 존재한다.

책은 조선소 일을 잘 모르는 독자도 ‘남초 사업장/직업군에서 최초라는 이유로 반짝 주목 받는 여성’ 혹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라는 납작하고 양분된 이해를 벗어나도록 돕는 길잡이 구실을 한다. “조선소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주인공인 구술기록”에 충실해서다.

자기 노동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하고, 자부심을 느끼며, 이런 자부심을 끊임없이 ‘후려치는’ 자본과 가부장에 일침을 날리는 멋진 언니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힘든 일을 할수록 임금이 높아야 하는데, 힘든 일을 할수록 임금이 낮아요. 뭔가 잘못된 구조”라고 입을 모으는 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자꾸 맴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이야기는 오래 산다 최재봉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8천원

1992년부터 한겨레에서 문학 담당 기자로 30년을 지낸 지은이의 글을 두루 엮었다. 작가·작품론부터 표절·노벨문학상 등 문학계 쟁점을 다룬 글, 문인 부고 기사, 남북작가대회에서 만난 북쪽 작가 인터뷰까지. 한국 문학·사회사를 다채롭고 생생하게 담았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피에르 소베트르·오 게강 지음, 정기헌 옮김, 장석준 해제, 원더박스 펴냄, 2만3천원

왜 어떤 정치 지도자는 노동·인종 혐오 등을 부추기며 시민들이 서로 싸우는 ‘내전’ 상태를 만드는가? 프랑스의 학제 간 연구모임 ‘신자유주의와 대안 연구그룹’(GENA)의 집단적 성찰 결과물. 신자유주의 역사에서 폭력과 내전이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 변형 전략을 분석한다.

돌봄, 동기화, 자유무라세 다카오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1만8천원

죽기 직전까지 ‘나다움’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일본 후쿠오카의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은 인지장애(어리석다는 뜻이 담긴 ‘치매’의 대체 용어)가 있는 노인들이 본래의 생활 리듬대로 살다 평온하게 임종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목표한다. 시설 소장이 경험담을 공유한다.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김지윤 지음, 사이드웨이 펴냄, 1만7천원

저널리스트이자 창업가인 지은이가 디지털 원주민 세대와 아날로그가 더 친숙한 기성 세대를 잇는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젊은 세대가 단순히 화면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게 아니라 화면 속에 자기 삶을 구축하고 있음을 분석하고, 다 함께 변화무쌍한 디지털 삶을 어떻게 살아낼지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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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얼굴 바꾼 인종주의김영호 지음, 뱃길 펴냄, 3만3천원

인류 역사상 가장 뿌리 깊고 끈질긴 편견과 차별 중의 하나는 인종주의다. 가장 극단적인 인종주의를 보여준 사람들은 서유럽인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이교도들을 찾아내 처형했고, 아메리카로 진출한 뒤엔 5천만명 이상을 총과 전염병으로 죽게 만들었으며, 아프리카에서 또 1천만명이 넘는 흑인들을 아메리카로 데려다 착취했다. 또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식민지를 건설해 현지인을 차별했다. 이것은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반서구주의의 근본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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