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귀신 되기 직전의 귀신고래들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가스’(GAS)라고 한 제보자는 한국계 귀신고래가 사라진 원인을 알고 있다고 했어요. 바로 미국으로 이민 가서 죄다 안 보였다는 거예요. 이건 아주 중요한 제보예요. 한국계 귀신고래가 사라진 원인은 지금까지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였거든요.
미스터리 중 미스터리, 한국계 귀신고래의 소멸
“귀신고래가 사라진 건 정말 수수께끼야.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동해에 많던 귀신고래가 1966년 포경선에 다섯 마리가 잡힌 이후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거든. 태평양 반대편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에는 귀신고래가 많아서 사람들이 머리도 쓰다듬고 악수도 한다던데 말이야.”
귀신고래는 두 개체군이 북태평양을 동서로 나눠 씁니다. 서부개체군은 매년 6월부터 11월까지 오호츠크해 연안과 사할린섬, 캄차카반도에서 여름을 보낸 뒤 남하해 남중국해에서 겨울을 나지요. 회유 시기에 동해를 지나가 우리가 볼 수 있었죠. 그래서 서부개체군을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불러요.
반면 동부개체군은 베링해와 알래스카 연안에서 여름을 보내다가 겨울엔 바하칼리포르니아의 따뜻한 바다로 내려가 새끼를 낳고 기르죠. 이 개체군은 개체수가 증가함에 따라 1994년 미국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삭제됐어요. 조사반장이 다시 혼잣말을 했습니다.
“두 집단은 교류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제보자 말로는 서부개체군이 동부개체군으로 대규모 이민을 가서 한국 동해에서 귀신고래를 볼 수 없게 됐다는 얘기인데, 그게 맞을까?”
조사반원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간의 가설은 인간의 과도한 포경으로 서부개체군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현재 25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어요.”
“그럼, 현장에 가보지.”
귀신고래가 뛰노는 유전?
귀신고래(서부개체군)는 동해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적게나마 만날 수 있는 곳이 있긴 해요. 바로 한여름 러시아 사할린섬 북동부 차이보만에서죠.
조사반이 헬리콥터를 타고 차이보만에 접근하자, 귀신고래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모래사장이 가까운 얕은 물에 머리를 박더니 꾸물꾸물 움직였죠. 주변으로 황톳빛 파도가 일었습니다. 조사반원이 아는 체를 했습니다.
“저건 귀신고래가 사냥하는 장면입니다. 얕은 바다에 몸을 처박고 모래를 뒤지면서 옆새우나 쏙 같은 작은 갑각류를 먹어요.”
만나기 위해 헬기를 착륙시키던 참이었는데, 고래는 화들짝 놀라 먼 바다로 가버리더군요.
몇 분이 지났을까. 고래가 사라진 쪽에서 고무보트가 파도를 헤치며 다가왔습니다. 보트 위 사람들은 ‘귀신고래가 행복한 사할린에너지’라는 견장이 붙은 파란 제복을 입고 있었어요.
“안녕하십니까? 귀신고래 구경하러 오셨군요?”
최고참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 네. 그렇긴 한데….”
“저기 해상 플랜트 보이시죠? 아주 깨끗하고 조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 동부개체군 귀신고래들이 이민 온다고 난리랍니다. 아까 모래 뒤지던 고래 있죠? 그 친구가 작년에 온 고래예요.”
수평선 가까이에 해상 플랜트가 외계에서 온 로봇처럼 서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러시아와 다국적 석유업체들이 합작법인을 만들어 원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사할린 프로젝트의 전진기지였죠.
“저희는 이곳을 생태관광지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귀신고래가 뛰노는 유전, 멋지지 않습니까? 아까 그 고래는 귀신고래의 전통 식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냉동 쏙 캔과 새우깡을 제공하니, 그저 고래는 쇼만 하면 되죠. 여기로 오겠다는 고래가 미국에 줄을 섰습니다.”
“그럼, 한국계 귀신고래가 이민 간 게 아니라 미국 귀신고래가 이민 온 거군요?”
“한국계 귀신고래는 없어진 지 오래됐어요. 우리가 미국 귀신고래를 데려와 복원하고 있는 겁니다.”
소멸인가 이민인가 회유인가
조사반은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로 향했어요. 석유업체 말대로 동부개체군이 한국에 오려고 줄을 섰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그곳은 유명한 고래관광지였습니다. 귀신고래를 구경하러 가는 보트에 조사반도 몸을 실었습니다.
멀리 나가지도 않았는데, 귀신고래 한 마리가 와서 보트에 붙더니 머리를 들이대더군요. 한 남자가 다 안다는 듯이 손을 쭉 뻗어 귀신고래를 쓰다듬더군요.
“이건 무슨 상황이죠?”
“바예나스 미스테리오사스(Ballenas Misteriosas·‘신비로운 고래’라는 뜻)! 호기심이 넘쳐서 자기를 만지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죠.”
조사반장도 잽싸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신고래에게 속삭였습니다.
“혹시 사할린섬 유전지대로 가는 이민자를 모집한다는 소식 들으셨어요? 거기 가면 사냥 안 해도 먹을 거 준다던데.”
“무슨 소리요? 우리 정체성은 얕은 바다 모래밭에서 사냥하는 건데. 그런데 이민 간 건 아니고, 옛날부터 베링해 남부를 횡단해서 사할린섬까지 오가는 무리가 있다고 듣긴 했어요.”
“사할린섬 유전지대에서 고래쇼를 준비하던 귀신고래를 봤어요. 여기서 왔다던데….”
“아, 그 불쌍한 친구! 석유업체가 뽑아서 데려간 거요. 2018~2019년은 우리에게 고난의 시기였죠. 바닷물 온도가 이례적으로 높았거든요. 바다얼음이 너무 빨리 녹아서, 얼음 밑에 붙어 사는 미세조류가 줄었고, 덩달아 그걸 먹고 사는 옆새우까지 사라져버려서 우리는 굶을 수밖에 없었죠. 2019년 우리 동부개체군 122마리가 좌초되거나 죽었지. 그 친구도 그때 엄마를 잃었어. 주변에 보살펴주겠다던 고래가 몇몇 나섰는데도, 혼자 살겠다며 그 더러운 유전지대로 간 거요.”
조사반은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원래부터 북태평양 동서를 오가는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로군.”
“그간의 자료를 뒤져보니, 2011년 사할린섬에 있던 ‘바바라’라는 귀신고래가 이듬해 미국과 멕시코에서 발견돼, 과학계가 뒤집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 같은 회유 경로를 지닌 귀신고래가 여럿 발견됐고, 지금은 과학자 사이에서 별도의 ‘태평양횡단개체군’으로 정리되는 형국입니다.”
“그렇담, 한국계 귀신고래가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제보자의 말은 뭐지? 결국 그들도 이민 간 게 아니라 옛날부터 존재했던 태평양횡단개체군이란 건가?”
수중에 퍼진 59~172dB 범위의 충격음
조사반은 다시 사할린섬으로 찾아갔습니다.
차이보만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는데, 시청 앞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199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계속된 유전·가스전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반장이 고참 격으로 보이는 활동가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석유업체가 고용한, 그 고래쇼 하는 귀신고래를 아십니까?”
“쉬잇! 이제 곧 나와 양심선언을 할 예정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이 보고서를 읽어보세요. 업체가 만든 모니터링 보고서를 우리가 입수했어요.”
‘외부 유출 금지’ 도장이 찍힌 두툼한 책자였습니다.
2015년 우리는 사할린 유전·가스전 후보지를 탐사하기 위해 업체가 시행한 탄성파 조사(지진파 조사·Seismic Test) 과정을 모니터링했다. 탄성파 조사에 따라 59~172데시벨(dB) 범위의 충격음이 수중에 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귀신고래의 수면 위 호흡 활동, 유영 속도, 수면 시간, 먹이 활동이 방해받았다. 현재 기준치가 163dB로 설정됐는데, 이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
드디어 귀신고래가 연단에 올랐습니다. 머리에는 따개비가 가득 붙었고, 수염 사이로 누런 모래 알갱이가 끼어 있었죠.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후변화 때문에 엄마를 잃은 동부개체군 출신 귀신고래입니다. 너무 슬퍼서 혼자 바다를 떠돌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귀신고래를 만났습니다. 과거 겨울엔 동중국해로 내려가던 서부개체군 친구들이었는데, 1990년대부터 사할린섬에서 이어진 환경파괴로 미국으로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살고 싶어서, 당신들이 버린 사할린섬으로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정 가고 싶으면, 옛날부터 미국과 사할린을 오가던 태평양횡단개체군이 소수 남아 있으니, 그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곳에 와보니 그들 또한 너무 큰 고통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귀가 멀 것 같은 소음과 시시때때로 돌진하는 선박, 걸리면 끝장인 정치망(자리그물) 때문에 공황 상태였죠. 앞으로 일본으로 가는 가스관까지 짓는다고 합니다. 멕시코만의 딥워터호라이즌호 사건처럼 기름 유출 사고라도 나면 끝장입니다. 저는 이곳에선 살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렵니다.”
귀신고래는 연단에서 내려와 천천히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수면 위로 도약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잠영해 사라졌습니다. 수평선 너머 괴물처럼 솟은 가스전이 노란 불꽃을 피워올리고 있었습니다.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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