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우크라, 백기 들고 항복할 용기 필요” 발언에 거센 역풍

정원식 기자 2024. 3. 1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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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누가 멈춰야 하나” 외교장관 “우린 국기만 들 것”
교황청 “휴전 촉구” 해명에도 동맹국들 “푸틴에게 말하라”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2년 넘게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백기를 들고 항복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0일 밤(현지시간) 동영상 연설에서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살려고 하는 사람과 당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중재하려면 2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과거 우크라이나에는 하얀 벽돌로 지은 집과 교회가 많았는데, 지금은 러시아 포탄에 맞아 그을리고 폐허가 됐다”면서 “이는 누가 전쟁을 멈춰야 하는지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에서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이 같은 발언은 전날 공개된 교황의 스위스 공영방송 인터뷰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선 백기를 들고 항복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항복은 강자를 유리하게 할 뿐이라는 주장이 엇갈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협상이라는 말은 용감한 말”이라고도 밝혔다.

AP통신은 교황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립을 취했으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을 전쟁 원인 중 하나로 꼽는 등 러시아의 침공 명분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인터뷰가 나간 뒤 교황은 용기 있는 협상을 통해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휴전할 것을 촉구했을 뿐이며 ‘백기’라는 표현은 교황에게 질문한 사람이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이날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국기는 푸른색과 노란색이다. 우리는 그 깃발 아래에서 살고, 죽고, 승리한다”면서 “우리는 다른 깃발을 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쿨레바 장관은 “가장 강한 사람은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과 악을 같은 선상에 놓고 ‘협상’이라고 부르는 대신 선의 편에 서는 사람”이라면서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주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교황청이 나치 정권의 만행에 눈감는 등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교장관은 엑스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의 군대를 우크라이나에서 철수시킬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어떤가? 그렇게 된다면 협상할 필요도 없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가르스 린케비치 라트비아 대통령은 엑스에 올린 글에서 “악이 백기를 들고 항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아그네스 슈트라크치머만 독일 연방하원 국방위원장은 “우크라이나 피해자들이 백기를 들기 전에 교황은 잔인한 러시아 가해자들에게 죽음과 악마의 상징인 해적 깃발을 내리라고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며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교황이 이렇게 하지 않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카트린 괴링에카르트 독일 녹색당 의원도 “당장 전쟁과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푸틴”이라며 교황의 발언을 비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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