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관행’ 총리 기자회견도 생략…‘시진핑 1인 체제’ 완성

박은하 기자 2024. 3. 1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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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정치 이벤트’ 전인대·정협 폐막
흐뭇한 표정의 시 주석 시진핑 국가주석, 리창 총리,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등 중국 지도부가 지난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협 폐막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정협과 함께 양회로 불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11일 폐막했다. AP연합뉴스
국무원 조직법 개정…당 장악력 커지고 경제·사회 분야 맡던 ‘책임 총리제’ 힘 잃어
과학기술 ‘새로운 질적 생산력’ 미국 패권에 도전…한반도 문제엔 전통적 입장 유지

중국의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대회가 30년 동안 관행적으로 이어지던 국무원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 없이 11일 폐막하며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인대·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일정이 마무리됐다. 양회 기간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시한 ‘새로운 질적 생산력’이 전면 강조되고, 정부를 당의 지도를 받는 존재로 규정한 정부 조직법이 개편돼 시 주석 1인 체제가 제도적으로 완성됐다. 경제 문제로 불안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책과 발언도 부각됐다. ‘시진핑 시대’를 확인하는 무대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 당 아래 ‘지도받는’ 정부

전인대는 이날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4기 2차 회의 폐막식에서 국무원(중앙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개정 국무원 조직법은 국무원이 공산당의 이념, 지도력, 지시를 더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행동 지침으로 삼는다는 규정을 담았다. 1982년 개헌에 맞춰 제정된 국무원 조직법은 제2조에서 “국무원은 총리 책임제를 실시한다”고 규정했으나 이번 개정으로 책임총리제는 힘을 잃었다. 정부가 당의 파트너에서 당의 지도를 받고 정책을 집행하는 하부기관으로 바뀐 것이다.

양회는 전통적으로 국가서열 2위이자 국무원을 이끄는 총리가 주목받는 자리였다. 총리는 통상 전인대 개막일에 정부 업무보고를 하고, 폐막일에는 양회 전체를 갈무리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해왔다. 정부가 경제 분야 등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갖고, 총리가 당 총서기(최고지도자)를 겸하는 주석과 국정을 나눠 맡는 시스템을 반영한 관행이다. 그러나 올해 양회에선 ‘집단지도체제’를 상징하는 관행과 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양회는 1993년부터 정례화된 총리 기자회견 중단 소식을 알리며 시작했다. 러우친젠 전인대 대변인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올해 전인대 폐막 후 총리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향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덩샤오핑이 설계한 집단지도체제가 이번 양회를 통해 제도적으로 막을 내렸다고 평가받는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종식 이후 당 총서기가 국가주석·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직하고 총리는 주로 경제·사회 분야를 책임지면서 국정을 나눠 맡았다. 집단지도체제의 핵심이던 당정분리 원칙은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 임기 제한이 철폐되는 등 하나씩 깨졌다. 법 개정으로 국무원이 ‘당의 지도’ 아래 있다는 점이 공식화됐다. 리창 총리는 지난 5일 “당 중앙의 결정과 안배를 잘 관철하는 충실한 행동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 새로운 질적 생산력

시 주석이 지난해 9월 헤이룽장성에서 제시한 ‘새로운 질적 생산력(新質生産力)’이 양회 기간 내내 강조됐다. 선진국 기술을 가져와 저렴한 노동력과 결합하는 기존 발전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과학기술 강국이 돼 글로벌 산업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발상이다.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의 의미도 담고 있다. 차이나모바일 회장이자 정협 위원인 양지는 관영 영자매체 글로벌타임스에 “중국은 인공지능(AI)·디지털화 등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런 주제에 대한 관심도는 미국보다 훨씬 높다”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출산율 제고, 청년 고용 촉진 같은 오랜 숙제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제시할지도 많은 제안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공급망을 업그레이드하고,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하며, 대규모 투자로 AI·신소재·수소 에너지를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담았다. 수소 에너지 투자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언급된 것은 처음이다. 전인대는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3708억위안(약 68조661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0% 올려 책정했다. 정부는 1조위안(약 182조1700억원) 규모의 초장기 특별국채를 발행했다.

경기침체, 청년실업 등으로 불안한 민심을 달래려는 발언도 두드러졌다. 리 총리는 지난 5일 “인민대중의 행복감과 안전감을 끊임없이 높일 것”이라고 밝혔으며, 시 주석도 이날 “대중이 스스로 손으로 행복한 생활을 쌓도록 고무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회 기간 청년 노동시간 단축, 전 국민 사회보장카드 완성 등과 관련한 정책이 관심을 얻기도 했다.

중국은 이번 양회에서 5%대 성장률 목표를 발표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중국 밖에서는 지배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 주석 등의 발언을 두고 “부동산 기업에서 계약자로 부동산 인도가 지연돼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이 같은 불안을 달래기 위한 시도라고 해석했다.

■ ‘한반도’보다 ‘글로벌 사우스’

왕이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우려된다며 근본적 해법으로 “대화와 교섭을 재개하고 모든 당사국, 특히 조선(북한) 측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결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전쟁 위험을 언급한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언급한 대목에서 최근 한반도 긴장 고조의 원인이 한국과 미국에 있다는 인식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베이징 분석가들의 평을 종합하면 중국 입장의 특별한 변화를 의미하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한반도 안정을 추구하는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쌍궤병진(비핵화와 평화협상 동시 추진) 해법을 제시한 것이 단적이다. 북한에 대한 견제구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외교 영역에선 미·중관계 안정화와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를 포괄한 다극화 전략 기조가 재확인됐다. 성균중국연구소는 “이번 양회에서 한·중관계와 중·일관계 등에 대한 언급은 없어 중국 외교에서 동아시아 주변국 외교의 우선순위 하락을 확인했다”며 “한·중관계의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됐고,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접점 모색이 난망하다”고 평가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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