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이유로 차별 안돼' 인권위 판단 이끈 아나운서의 바람
[인터뷰] 김난영 전 연합뉴스TV 아나운서 "후배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길"
인권위 '여성 아나운서 차별시정' 권고 불수용 이후 2년
"여성 아나운서 출산 후 복직 선례 안 만들려는 방송사"
[미디어오늘 김예리, 박서연 기자]
“박봉, 고용 불안 등 열악한 처우라도 그 일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나운서 후배들이 인간적 대우를 받길 바랄 뿐입니다.”
출산한 프리랜서 여성 아나운서들의 복귀를 거부하는 방송계 성차별 관행을 공론화한 김난영 전 연합뉴스TV 아나운서의 말이다. 김난영씨(전 직함 생략)는 10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 및 서면 인터뷰에서 “방송사는 선례를 남기고 싶어하지 않고, 내부에선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며 그간 방송사의 성차별 관행에 맞섰던 소회를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6월14일 연합뉴스TV가 프리랜서 아나운서에 대해 출산 뒤 복직을 거부해온 관행이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TV 개국 멤버이자 1기 아나운서였던 김씨의 진정에 따른 결과였다. 인권위는 연합뉴스TV가 김씨를 복직 조치하고, 여성 아나운서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연합뉴스TV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연합뉴스TV 아나운서 20명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는 남성 1명 뿐이다. 나머지 아나운서들은 여성 10명, 남성 9명 등 19명 모두 프리랜서다.
아나운서 '무늬만 프리랜서' 채용 관행과 성차별적 경력단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방송계의 불안정 고용 관행은 오히려 고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를 두고 김씨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듯하다”면서 “한 여성을 정규직 전환해주면, 한 여성을 출산 후 복직시켜주면 나머지 수십 명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막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사측 대응을 본인 경험에 비춰 설명했다. 인권위 결정문과 김 아나운서 설명을 종합하면 그는 2009년부터 연합뉴스, 2011년 연합뉴스TV 개국 후엔 연합뉴스TV에서 모두 10년가량 일하다 2018년 5월 출산을 위해 방송을 중단했다. 당시 아나운서들은 정규직과 프리랜서 구분 없이 다 같이 출퇴근하며 직무훈련을 받았고, 보수도 월급으로 받았다.
이후 일부 아나운서들이 연합뉴스TV 상대로 퇴직금 등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으려 하자, 연합뉴스TV는 정규직과 프리랜서들의 출퇴근 체제와 업무 공간, 급여 지급 방식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출산한 그해 10월 복직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거부당했다.
“출산 후 복직을 요구한 것도 앵커 중엔 제가 처음이었다. 국가인권위로 가면 나와 사측이 서로 의견을 내는데, 그때 상처를 많이 입는다. 근무평가가 안 좋았다거나 복직 불가 이유가 출산 때문이 아니라는 식으로 공격한다. 수많은 앵커들을 매정하게 내보낸 게 연합뉴스TV다. 근무평가가 안 좋은 사람을 왜 10년이나 썼을까?”
인권위는 김 전 아나운서에 대해 “6년9개월가량 장기근속한 경력 자체가 진정인의 방송진행 능력과 전문성, 연합뉴스TV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진정인의 근로자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연합뉴스TV는 인권위 결정이 나오기 전 진정을 제기하지 않은 다른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복직시켜 '꼼수' 논란을 낳기도 했다. 김씨는 “출산 후 복직한 사례가 없다는 걸 지적하니, 인권위 판단이 나오기 직전에 출산 후 쉬고 있는 후배한테 갑자기 전화해 복직을 시켰다. 나와 많이 친했던 친구인데 소원해졌다. 슬프더라”고 전했다.
그는 “그렇게 기를 쓰고 막았지만 인권위에선 회사가 부당하다는 판단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연합뉴스TV가 다른 사안을 비판할 자격이 있나 싶다”고 했다.
방송사 내부에서는 여전히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는 “회사의 잘못된 정책이나 판단이 문제인 거지, 같이 일했던 앵커, 기자, PD 등의 동료들은 대부분 좋고, 응원이나 연락도 많이 온다. 그러나 내부에선 목소리 내기 힘드니 밖에 있는 제가 내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관리자로부터 '결혼을 안 하느냐', '출산 뒤 왜 굳이 돌아오려 하느냐' 따위의 말을 듣는다. 그는 “젊은 여성 앵커만 쓰려는 고정 관념이 아직도 있는 것 같다”며 “연합뉴스TV에 국한해 보면 결혼·출산한 대부분의 선배 앵커들은 나가거나 내쳐졌고, 현재 남아있는 앵커들은 거의 다 30대 이하”라고 꼬집었다.
김씨는 “(아이를) 낳고 싶을 때 낳고, 그 자리에 돌아갈 보장이 되는 사회여야 출산율이 높아질 텐데, 출산을 이유로 채용 자체가 안 되거나 근무 중에도 복직 거부, 해직되는 등의 불이익이 생겨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나운서라는 직종 자체가 불안정하게 고용되는 현실도 함께 짚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남성 정규직 비율이 높긴 하지만, 요즘엔 남성 아나운서들도 비정규직으로 많이 뽑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광주MBC에서 일하다 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 판단을 받은 김동우 아나운서(가명·남성)도 회사를 상대로 '제대로 된 근로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주위에선 소송을 해보란 얘기도 많이 들었다. 인권위 결정문 토대로 승소할 자신도 있지만, 소송으로 싸워가면서까지 그런 매정한 회사에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 제가 너무 사랑했고, 청춘을 다 바친 회사인데 이제 그 채널을 보기가 너무 힘든 현실이 씁쓸하다.”
지금은 연합뉴스TV를 떠나 다른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이런 바람을 남겼다. “이젠 앵커 후배들이 좀더 나아진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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