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찍 對 찢’

배성규 기자 2024. 3. 1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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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흑인·이민자를 수시로 비하했다. “미국 피를 오염시키는 지능 낮은 사람들”이라고 했고 “침공자”라고도 했다. 인도계인 공화당 니키 헤일리 후보는 이상한 인도식 이름으로 불렀다. 이에 민주당 측은 트럼프의 극렬 지지층을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 부르며 “나라 망치는 세력”이라고 했다.

▶과거 영남과 호남 출신을 ‘보리문둥이’와 ‘홍어’로 부른 때가 있었다.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던 영남과 홍어가 많이 나는 호남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한동안 정치권에선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불렀느니, 안 불렀느니 논란이 되곤 했다. 우파는 좌파를 ‘빨갱이’라고 했고, 진보는 보수를 ‘수꼴’이라고 불렀다. 젊은 남녀들도 서로를 ‘메갈(극단적 페미니스트)’ ‘된장녀’, ‘일베충’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이라 부르며 비하했다.

▶대통령을 폄하하는 멸칭도 유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구리’ ‘놈현’이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쥐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닭그네’로 불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지층에선 ‘달님’이라고 했지만, 반대편에선 ‘문재앙’이나 ‘곰’이라고 했다. ‘곰’은 ‘문’을 뒤집은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고 해서 ‘윤도리도리’, 양다리를 벌리고 앉는다고 해서 ‘쩍벌’이란 멸칭이 붙었다. 근래엔 ‘굥’이 추가됐다. ‘윤’을 뒤집은 것이다. 일부 방송사가 ‘서울교통굥사’라고 자막을 잘못 냈다가 국민의힘에서 항의를 받았다. 민주당 지지층은 ‘윤 정부는 공정하지 않다’며 ‘굥정’이라 불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지층은 스스로를 ‘개딸’(개혁의 딸)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이름이 됐다.

▶이 대표가 선거 도중 만난 시민에게 “설마 ‘2찍’ 아니겠지”라고 말했다가 사과했다. ‘2찍’은 지난 대선 때 기호 2번 윤 대통령을 찍은 보수 지지층을 폄하하는 말이다. 대선 때 2번을 찍은 국민은 절반에 달한다. 이 엄청난 숫자의 국민을 대놓고 비하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득이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에선 이런 이 대표를 향해 ‘찢재명’이나 ‘찢’이라 부르는 댓글들이 홍수를 이룬다. 형수에게 했던 막말을 빗댄 멸칭이다. 사회와 정치를 빨리 타락시키는 건 오염된 언어라고 한다. 오염된 언어 중에서도 상대를 무엇으로 낙인찍는 멸칭이 심각하다. 상대를 비하하면 자기 격도 떨어진다. 혐오와 적대감을 부추기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낙인찍기 멸칭은 사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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